항목 ID | GC60002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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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魯珀 |
영어공식명칭 | Bak Nobaek |
이칭/별칭 | 박형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노백(朴魯珀)[1903~1958]은 전라남도 광주군 하남면 장수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에서 태어났다. 박형채(朴炯採)[또는 朴炯埰, 朴炯采]라고도 불렸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으며,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였다. 1928년 일본 도쿄 요츠야구[四谷區] 신주쿠[新宿] 소재 무사시야[武藏屋] 백화점 옆에서 시위를 벌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활동 사항]
박노백은 경성에 있는 배재학당을 졸업한 후, 1925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다. 일본 유학 중에는 재동경동부노동조합(在東京東部勞動組合) 조사부 위원, 신간회 동경지회 설립 대회에서 간사로 선출된 후 신간회 총무 간사, 학생부 간사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 정기회 참석 위원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방학 중에는 중국 간도 훈춘[琿春] 등지에서 순회 강연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 경험으로 민족 독립을 위해서는 노동자 단결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27년 10월 하순경 신간회 동경지회 사무소에서 김상혁(金相赫)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다.
고려청년회는 1928년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인 8월 29일 오후 9시경 일본 도쿄시 요츠야구 신주쿠 소재 무사시야 백화점 옆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신간회 동경지회,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회원 등 약 150명을 모아 대대적인 반일 시위를 벌였다. 일본 경찰은 시위 배후에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있다고 지목하고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하였다. 이에 따라 박노백은 1928년 11월 초순에 체포되어 1931년 3월 31일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31년 4월 8일 항소를 제기하여 풀려나자 곧바로 탈출하였다. 1958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