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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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雲泳 |
영어공식명칭 | Choe Unyeong |
이칭/별칭 | 최판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노기욱 |
[정의]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
[개설]
최운영(崔雲泳)[1906~1932]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일명 최판영(崔判泳)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최초 영화배우로, 전라남도 광주·목포 간 일대를 배경으로 조선 사람의 참담한 생활과 성(性)에 대한 갈등을 폭로하고 영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최운영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광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광주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상급 학교인 경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최운영의 둘째 형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 3.1운동을 이끈 최한영(崔漢泳)이다. 최한영은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남도청에 근무 중 광주 지역 3.1운동을 주동하여 3년 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이다. 최운영의 집은 광주 3.1운동에 사용할 독립선언문, 경고문, 독립가 등을 인쇄하던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모임 장소였다.
최운영은 서울에서 경신학교를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배우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사인 쇼치쿠[松竹] 영화사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하여 곧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였다. 1932년 영화 「지는 꽃」의 주연을 맡는 등 크게 활약하였는데,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한국 개봉을 위해 무대 인사차 경성(京城)에 온 최운영의 동정을 크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전라남도 광주에 돌아와서 「순애야 잘 있거라」 등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1930년 3월 초순부터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양키네마' 첫 작품 「지지마라 순희야」라는 영화를 촬영하였다. 1930년 4월 10일 경성의 조선극장에서 개봉된 「지지마라 순희야」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목포 구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조선 사람들의 참담한 생활과 성에 대한 갈등을 폭로하고 새로운 길을 보여 주는 영화였다. 김정숙(金靜淑)이 출연하였다.
조선 영화계를 대표하던 최운영은 일본 동아키네마 의탁생으로 입사하여 영화 연구에도 앞장서다 1932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