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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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道采 |
영어공식명칭 | Mun Dochae |
이칭/별칭 | 숙암,문왕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모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문도채(文道采)[1928~2003]는 전라남도 승주군[지금의 순천시]의 쌍암면 유평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숙암(肅巖)이다. 유년 시절에는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순천남국민학교 고등과와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교직 생활과 시작 활동을 병행하며 『쌈지』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활동 사항]
1951년 광주서석국민학교[지금의 광주서석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부터는 살레시오고등학교, 전남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3년 광주동성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창작 활동을 꾸준하게 해 왔던 문도채는 45년간의 교직 생활 가운데에서도 창작 활동과 문단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52년 첫 시집인 『쌈지』[태문당서점]를 문왕수(文王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이후 1997년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1968년부터 '원탁시' 동인으로, 1970년에는 시조 예술 동인회인 '영산강' 의 창립 회원으로 동인지 『영산강』과 『영산강』의 후신인 『녹명(鹿鳴)』의 발간을 주도하였다. 1975~1976년 전라남도문인협회 부회장과 1981~1982년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8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남도문인협회에서 분리된 '광주광역시문인협회' 창립 회원으로 시 분과에서 활동하였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1995~1998년 『호남교육신문』 주필, 1998~1999년 『동서일보』 주필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2003년 제8시집 발간을 준비하던 중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도채가 발간한 시집은 일곱 권이다. 1952년 제1시집 『쌈지』, 1976년 제2시집 『처음 써보는 사랑의 시』[세운문화사], 1980년 제3시집인 시조집 『남도연가』[시문학사], 1987년 제4시집 『달력을 넘기며』[문원각], 1990년 제5시집 『무등산 너덜겅』[문학세계사], 1992년 제6시집 『산은 산대로 나는 나대로』[시문학사], 1997년 제7시집 『황혼, 벤치에 앉아서』가 있다.
2018년에는 제8시집 『풍암골』에 수록될 계획이었던 시편들이 포함된 『문도채 시 전집』[문학들]과 제1시집 『쌈지』의 복간본[문학들]이 발간되었다. 시집 외에 1984년에 발간한 『진흥과 모래』[세종출판사]와 1985년에 발간한 『조용한 강자』[문원각]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묘소]
문도채의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리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전라남도 문화상 문학 부문, 1988년 평화문학상, 2002년 무등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교육자로서도 1973년 문교부장관 표창, 1988년 문교부장관 표창, 1988년 대한교육연합회장 표창, 1993년 광주교육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