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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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有煥 |
영어공식명칭 | Choi Yoohwan |
이칭/별칭 | 덕장(德章),소담(小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바른 |
출생 시기/일시 | 1825년 1월 - 최유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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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96년 11월 - 최유환 사망 |
출생지 | 지산마을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관직|경력 | 감찰(監察)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최유환(崔有煥)[1825~1896]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장(德章), 호는 소담(小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태지(崔泰之)이며 할아버지는 최맹순(崔孟淳)이다. 아버지는 최익창(崔益昌)이고 어머니는 박경현(朴瓊鉉)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부인은 임영찬(林永璨)의 딸 평택임씨(平澤林氏)로, 5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최기룡(崔基龍), 최기준(崔基準), 최기표(崔基豹), 최기호(崔基虎), 최기홍(崔基鴻)이다.
[활동 사항]
최유환은 1825년(순조 25) 1월 전라도 광주 지산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족조(族祖) 최모순(崔模淳)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최유환이 서너 번 읽고 외워서 그 뜻을 헤아리고 필법 역시 뛰어나 최모순이 "우리 가문의 큰 인물이 될 만하다."라고 칭찬하였다. 나이가 들어서는 박정휴(朴鼎休)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참봉 김도환(金道煥)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교유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여 십여 년을 건강히 지내도록 하였으며 사망하자 정성을 다해 상례(喪禮)를 마쳤다. 이에 1844년 2월 도내 유생들이 최유환을 효자로 천거하여 포상을 받았다.
최유환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나 난이 평정되어 의병을 해산하였다. 1888년 최유환의 학식과 충정이 조정에 알려져 6품직인 감찰(監察)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았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여 거병하고자 하였으나 선유(宣諭)를 받고 돌아왔다. 1896년 11월 72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최유환의 유고(遺稿) 및 관련된 문집을 모은 『소담실기(小潭實記)』가 있다. 『소담실기』는 2017년 문중에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묘소]
최유환의 묘소는 주(州)의 소금치(素琴峙) 임원(壬原)에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