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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47
한자 金浯
영어공식명칭 Kim Oh
이칭/별칭 중원(仲源),칠매당(七梅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7년 4월 7일연표보기 - 김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0년 - 김오 사마시 생원 3등 입격
몰년 시기/일시 1676년연표보기 - 김오 사망
묘소|단소 분적산(紛積山)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광산(光山)
대표 관직|경력 생원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김오(金浯)[1617~1676]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원(仲源), 호는 칠매당(七梅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충남(金忠男)이며 할아버지는 김형(金逈)이다. 아버지는 김성로(金成輅)이고, 어머니는 전력부위(展力副尉) 이신남(李信男)의 딸 황주이씨(廣州李氏)이다. 부인은 진사 양시면(楊時冕)의 딸 남원양씨(南原楊氏)로, 2남 2녀를 낳았으며 아들은 김진익(金震翼), 김진우(金震羽)이다.

[활동 사항]

김오는 1617년(광해군 9) 4월 7일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김집(金集)과 송준길(宋浚吉)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40년(인조 18)에 아버지가 병환이 위중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는 등 극진히 간호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한 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맞게 상(喪)을 치르었다. 1660년(현종 1) 사마시(司馬試) 생원 3등으로 입격하였으며 경학(經學)에 전념하였다. 1661년(현종 2) 어머니 나이가 80에 가까워 병이 깊었는데, 김오 역시 몸이 쇠하였으나 효성을 다하여 모셨으며, 상 또한 아버지와 같이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맞게 치르었다. 1676년(숙종 2)에 사망하였으며, 양응수(楊應秀)가 쓴 김오의 행장이 『백수선생문집(白水先生文集)』에 전한다.

[묘소]

김오의 묘소는 전라도 광주의 남쪽 분적산(紛積山)[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장사 지냈으며, 부인 양씨와 합장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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