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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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䃢 |
영어공식명칭 | Park Geu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후기 광주 출신의 효자.
[가계]
박금(朴䃢)[?~?]의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할아버지는 박시영(朴時英), 아버지는 박사원(朴思遠)이다. 동생은 박초(朴礎), 아들은 박재무(朴再茂)이다.
[활동 사항]
박금은 성품이 정직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다. 날이 더울 때는 항상 부채질을 하여 손이 부르텄고, 병환이 있을 때는 손가락을 자르고 변을 맛보는 등 극진하게 효를 다하였다. 부모가 사망한 후에는 6년간 여묘살이를 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박금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사당에 부지런히 참배하였으며,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일삼지 않았다. 박금이 효행으로 가정에 교훈을 남기니, 효헌공(孝憲公) 조상우(趙相愚)[1640~1718]가 박금의 행적을 담아 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렸다. 조상우는 1686년(숙종 12) 5월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는데, 이를 전후한 시기에 박금의 효행을 조정에 알렸을 것으로 보인다.
[상훈과 추모]
1862년(철종 13)에 박금의 효행에 대해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호역(戶役)이 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