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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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審幾 |
영어공식명칭 | Yi Simgi |
이칭/별칭 | 극중(克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에 거주한 문신·효자.
[가계]
이심기(李審幾)[1521~1545]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극중(克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연산현감을 역임한 이연(李涓), 할아버지는 이신의(李愼意), 아버지는 이발(李潑)이다. 어머니는 오암(吳巖)의 딸 나주오씨(羅州吳氏), 부인은 설전(薛巓)의 딸 순창설씨(淳昌薛氏)이다.
[활동 사항]
이심기는 1521년(중종 16)에 태어났으며, 전라도 광주에 거주하였다. 1537년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154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심기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문인(門人)이었으며, 급제 후 관직은 정자(正字)[조선시대 홍문관·승문원·교서관(뒤에 규장각에 소속)의 정9품 관직]이다. 성품이 깨끗하고 순수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3년 여묘(廬墓)살이를 하였다. 암행어사에 추천을 받았으나 훼방을 받았다. 1545년(인종 1)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