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69 |
---|---|
한자 | 鄭騭 |
영어공식명칭 | Jeong Jeul |
이칭/별칭 | 동계처사(東溪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정즐(鄭騭)[1545~1603]의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이득(鄭以得), 할아버지는 정형(鄭珩)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정희렴(鄭希廉), 어머니 강릉김씨는 참봉 김응두(金應斗)의 딸이다. 사위는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손자 기정헌(奇廷獻)이다.
[활동 사항]
정즐은 기대승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관직은 참봉(參奉)이다. 사람들은 정즐을 동계처사(東溪處士)라고 불렀다. 정즐이 스승 기대승과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를 만나고 온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일찍이 기대승이 김인후를 만나러 갈 때 정즐이 함께 따라갔다. 기대승이 “하서는 어떠한가?” 하고 물으니, 정즐은 “세속에 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품과 몸가짐[氣像]이 삼대의 유풍(遺風)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기대승이 잘 보았다고 하였다. 이후 정즐이 김인후에 대해 말하기를, “하서 선생의 생김새는 세간에서 그와 비슷한 용모는 아직 보지 못하였는데, 일찍이 「군신도상(君臣圖象)」을 보니 이태백의 풍채[面采]를 오직 닮았다”라고 평가하였다.
한편,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보면, 1576년(선조 9) 12월에 유희춘, 최상중(崔尙重)[1551~1604] 등과 이야기 나누던 양사형(楊士衡)[1547~1599]이 “광주의 정즐과 장성의 정운룡(鄭雲龍)이 모두 기대승[奇高峯]의 제자인데, 지조와 행실이 취할 만한 사람입니다”라고 언급한 기록이 있다. 이러한 일화들을 통해 볼 때, 정즐은 기대승의 대표적인 제자로 당대 전라도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