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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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必光 |
영어공식명칭 | Go Pilkw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가계]
고필광(高必光)[?~?]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고중영(高仲英)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고경조(高敬祖)이다. 할아버지는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추증된 고성후(高成厚)이며, 아버지는 현감(縣監) 고전옥(高傳沃)이다.
[활동 사항]
고필광은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용력과 기개가 있었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명장(名將)으로 이름을 떨친 장봉익(張鵬翼), 민제장(閔濟章)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나라를 지킬 인재라는 뜻의 ‘간성지재(干城之材)’라고 하였다. 1675년(숙종 1) 덕원(德源)에 유배 중이던 송시열에 대한 처벌 문제 및 복제(服制) 논쟁 등의 을묘사화(乙卯士禍)에 연루되어 옥에 갇혔다. 이에 송시열이 고필광에게 글로 이르기를, “옛날 도요장군(度遼將軍)은 당화(黨禍) 입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였는데, 지금 장군은 구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고필광은 오위장(五衛將)으로서 이른 나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