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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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景鍊 |
영어공식명칭 | Ok Kyungryeon |
이칭/별칭 | 덕후(德厚),청강(晴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후기에 오수찰방,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광주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옥경련(玉景鍊)[1829~1898]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옥동진(玉東振), 할아버지는 옥석현(玉碩炫), 아버지는 옥재서(玉在瑞)이다.
[활동 사항]
옥경련은 1829년(순조 29) 태어났으며, 나이 40세가 되던 1868년(고종 5) 정시(庭試)에서 을과 1위[전체 2위 아원(亞元)]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 시험은 경복궁의 중건과 대왕대비전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하여 창경궁(昌慶宮) 춘당대(春塘臺)에서 치러졌다.
옥경련은 과거에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 체직(遞職)되었다. 그 뒤로 옥경련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고종실록(高宗實錄)』에서 고종 11년인 1874년에 옥경련을 ‘전 오수찰방(前 獒樹察訪)’으로 지칭한 것으로 볼 때 그 전에 현재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일대의 찰방에 발탁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사헌부지평과 장령 등을 역임하였고, 1898년(광무 2)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 고교리 석우마을에 ‘의령옥씨 삼강정려(宜寧玉氏三綱旌閭)’가 세워져 있다. 이 정문(旌門)은 옥석현, 옥재서, 옥경련 3대의 충과 효를 기리기 위해 1962년에 종중에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