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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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思遐 |
영어공식명칭 | Park Saha |
이칭/별칭 | 영관(永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승정원주서, 정자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박사하(朴思遐)[1617~?]의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영관(永觀)이다. 문간공(文簡公) 박상(朴祥)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박시영(朴時英)이다.
[활동 사항]
박사하는 1617년(광해군 9)에 태어났다. 28살이 되던 1644년(인조 22)에 시행된 별시에서 병과 12위[전체 16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당시 시험 문제는 ‘책문(策問) 변통(變通)’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박사하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 등 과거에 합격한 이후의 행적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광주읍지(光州邑誌)』에 따르면 박사하는 중훈대부(中訓大夫)로서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정자(正字), 저작박사(著作博士) 등을 역임하였고, 한림(翰林)에 천거되었다고 한다. 또한, 재성(才性)이 수미(粹美)하고 일찍 문장을 이루었으나, 친상(親喪)의 슬픔이 지나쳐 병으로 일찍 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