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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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憲昌 |
영어공식명칭 | Kim Heonch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문다성 |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시중과 광주의 지방관을 역임한 진골 귀족.
[가계]
김헌창(金憲昌)[?~822]의 아버지는 태종무열왕의 6세손인 이찬 김주원(金周元)[?~?]이다. 김헌창의 아들은 김범문(金梵文)[?~825]이다.
[활동 사항]
김헌창은 807년(애장왕 8) 정월에 시중으로 임명되었다가 물러났다. 813년(헌덕왕 5) 1월 무진주도독(武珍州都督)이 되었고, 814년(헌덕왕 6) 8월 다시 시중에 임명되었다가 물러났다. 816년(헌덕왕 8) 1월 청주도독(菁州都督)이 되었고, 821년(헌덕왕 13) 4월 웅천주도독(熊州都督)이 되는 등 주로 외직(外職)으로 활동하였다.
김헌창은 822년(헌덕왕 14) 3월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명분으로 웅천주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김헌창은 신라 왕조를 부정하고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으로 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오늘날 광주 지역인 무진주는 완산주(完山州), 청주, 사벌주(沙伐州)와 국원소경(國原小京), 서원소경(西原小京), 금관소경(金官小京)과 함께 김헌창의 협박으로 인해 반란 세력에 가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헌창의 반란은 한 달을 못가서 신라의 토벌군에 진압되었다. 신라의 토벌군이 경상북도 성주에서 반란군과 대치하는 사이 선발대가 후방의 보은산성을 점령하면서 전세는 토벌군으로 기울었다. 이후 반란군의 최후 거점인 웅진은 신라군에 포위되어 10일 만에 함락당하였다. 성이 함락되기 직전 김헌창은 자결하였고, 성을 함락한 신라는 반란의 핵심 관련자 239명을 처형하였다. 김헌창의 반란이 진압된 후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이 825년(헌덕왕 17) 1월에 다시 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