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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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承氏 |
영어공식명칭 | Gwgsanan Seu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승개를 시조로 하고 승우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광산승씨(光山承氏)는 고려 정종 때 사람 승개(承愷)를 시조로 한다. 광주광역시 광산승씨 입향조는 승우(承祐)이다. 광주광역시에는 12가구 72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승씨(承氏)는 이미 고려 초기부터 그 이름이 나오는 성씨이다. 고려 3대 정종 8년 승유(承油)가 나오고 승시용(承時用), 승신(承信) 등 5명의 인물이 『고려사』에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 무진군 토성 항목에 13토성 중 하나로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광산승씨도 나오지만 『문헌비고』는 광주승씨로 나오고 모두 10관(貫)의 승씨가 있다. 현존 광산승씨들은 고려 정종 때 사람 승개를 시조로 하여 4세인 승우가 광주에 내려와 정착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시조 묘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원당에 설단해 묘제를 지낸다. 국내 승씨는 762가구 2,494명로 그 중 가장 많은 본관이 연일승씨이다. 조선시대에는 북한의 정주에 살고 있던 연일승씨에서 문과 급제자만 9명을 냈다. 이 9명도 숙종 이후 고종 때까지의 조선조 말엽이다.
[현황]
광산승씨들은 시조 승유의 증손자 승우가 광주에 내려와 정착하였다. 승우의 손자 승안도(承安道)가 1422년(세종7)에 무안 임치만호를 지냈고 승우의 10세손 승설(承渫)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다가 도망쳐 오늘날 광주에 사는 승씨 가문을 이었다고 한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 475명, 광주광역시에는 12가구 7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의 광산구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