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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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成氏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 S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연원]
광산성씨(光山成氏)는 조선 초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광산현 토성 13성씨 중 하나로 나오는 광산 본관 성이다. 성씨(成氏)는 국내 37위의 성씨로 시조를 달리하는 15본관으로 나눌 수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보면 옛날에는 본관이 52본에 달했으나 많이 합해지거나 없어졌다. 광주 본관 성씨도 그 중의 한 성씨이다. 조선 초기 광주의 18대 성 중 오늘날 그 후손이 끊긴 성씨는 광산성씨, 광산진씨(光山陳氏), 부곡김씨(部曲金氏)의 3성이다.
조선 초기 광주 토반으로 살았던 광산이씨나 광산김씨 등 집안의 족보를 보면 성씨(成氏)나 안씨(安氏) 등이 종종 나타난다. 이를 미루어보면 역시 조선 초기에는 성씨나 안씨들도 토반 세력으로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창녕성씨(昌寧成氏) 중 쌍곡공파인 성인(成珚)과는 광주와 깊은 인연이 있다. 성인의 큰아들 성암은 광산김씨 사위였고, 성암의 동생 성억은 전라감사를 지냈을 뿐 아니라, 성암의 둘째아들 성봉조(成奉祖)[1401~1474]와 손자 성율(成慄)이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데 이어 증손자 성세준(成世俊)도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약함의 사위였던 성암의 큰아들 성염조(成念祖)[1398~1450]는 광주에 살던 해주목사 안종약(安從約)의 딸에게 장가가서 성임(成任), 성현(成俔) 등을 광주에서 낳아 길렀다. 이 때문에 광주 옛 기록에 성임과 성현의 글이 들어 있고, 광주향교기를 쓴 성현(成俔)은 이종사촌인 박이온(朴而溫)[1461-1524] 함양박씨의 부탁을 받고 이 글을 쓴다고 하였다. 성현의 형 성임(成任)은 "호남 50고을 경치는 내 고향을 꼽는다네……"라고 광주를 읊었다. 성현도 객관중수기를 쓰면서 "나는 광산김씨에게서 태어났으니 어찌 광산에 무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인연을 밝혔다. 이처럼 뒷날의 창녕성씨들에게서 광산이 고향임을 들을 수 있으나, 본관인 광산성씨는 찾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