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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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張氏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 J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개설]
광산장씨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지방종합지에 나오는 광산 본관 장씨이다. 장(張)씨는 국내 9위의 성씨로 『증보문헌비고』에는 245본관을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 장씨 본관 수는 61본이다. 전국 장씨 91만 9339명 중 인동장씨가 64.3%를 차지한다. 인동은 안동의 옛이름이므로 같은 고장을 뜻하고 있지만, 인동장씨는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고 안동장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장길(張吉)이 시조라 하여 각각 다르게 주장한다. 장씨들은 완도 청해진 장보고(張保皐)와 관련해 중국에서 귀화해 생활하다가 신라의 숙청을 피해 중국에 되돌아갔다가 그 후손들이 다시 입국해 장씨들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연원]
장씨는 본관이 많은만큼 역시 전라남도에 본관을 둔 장씨로 구례장씨, 강진장씨, 순천장씨 등이 있고 광주장씨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 성씨는 조선조에 접어들어 고려 때 분정된 지방호장층이나 향리 집단이 모두 그곳 고을의 이름을 본관으로 삼고 있어서 고려 때 본관수는 3,964본에 달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같은 성자끼리 합하는 대동화운동이 시작되면서 본관이 크게 줄었다. 근래 국제결혼 등 새 성씨 창설이 손쉬워지면서 2015년 본관수는 3만 6744본으로 크게 늘어났다.
아직도 광주 본관을 쓰고 있는 장씨는 전국에 1,569명이 있고 광주광역시에도 138명이 살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장씨로는 인동장씨가 1만 5162명으로 가장 많고 흥덕장씨가 두 번째로 많아 4,892명이다. 흥덕은 오늘날 전라남도 고창군의 한 면(面)의 이름이 되었지만 조선조 때는 엄연한 독립 고을이었으며 고려 때는 흥성으로도 불렀다.
광주 지역에 살던 흥덕장씨 중 장세문(張世文)은 1879년 문과에 급제했고 장익한(張翼漢)은 참의벼슬을 산 기록도 나온다. 『우잠잡저 (愚岑雜著)』의 저자 한약방 장태경(張泰慶)[1809-1887]은 옥구장씨였다.
광주 시내에서 가장 많은 흥덕장씨는 11세 장희(1580~1635)가 광산김씨 집에 장가 왔고 12세 장생(1633~1702)이 광주정씨 집에 장가와 산 기록이 나온다.
광산 본관 장씨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