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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 성씨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89
한자 世居姓氏
영어공식명칭 Residing Family Nam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호

[정의]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에 대한 개관.

[개설]

‘씨(氏)’는 사람 이름에 붙여 쓰는 높임말이다. ‘성(姓)’은 혈연 관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옛날의 성은 낳은 어머니를 뜻하였으나 점차 사회제도가 부계사회로 정착되면서 한 시조를 내세워 그 후손들이 다같이 쓰는 부호가 되었다. 중국의 신화시대라 할 삼황오제시대는 모계사회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 민족의 시조로 내세우는 황제헌원(皇帝軒轅)의 성을 '희(姬)'라 하는 것은 아버지보다 낳은 어머니를 이른다. 염제신농(炎帝神農)의 어머니는 여등(女登)으로 강수 기슭에서 살아 성을 강(姜)이라 하였으므로, 염제신농과 그 후손들도 성을 강이라 하였다는 따위가 성씨의 연원이다. 민족의 시조는 중국 삼황오제처럼 어머니를 중심으로 시조를 내세웠고, 서양의 대부분 민족 시조 신화도 어머니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 어머니 성모마리아는 있어도 아버지는 없다. 단군왕검의 어머니도 곰이라 단군의 이름이 왕검이다. 신라 박혁거세나 가야 김수로, 고구려 주몽도 모두 알에서 낳았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신화시대를 거쳐 아버지인 남자들이 주도하는 부계사회가 되면서 성씨는 점차 땅이름, 나라이름 등으로 변하고, 시조가 살았던 지방 이름이 본관이 되었다. 같은 성자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피갈래가 다르다는 표시로 본관이 생겨난 것이다. 한국의 성씨는 박처럼 크게 생긴 알에서 나왔다 하여 신라 박(朴)씨가 생겨나고, 28년(유리왕 5) 경주의 6촌장들에게 6가지 성[李, 裵, 孫, 薛, 鄭, 崔]을 주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 나오는 신라 때 첫 성씨 인물은 중국 『북제서』에 신라 24대왕 진흥왕[540~576]이 김씨로 나오고, 중국 『구당서』에 26대 진평왕[579~632]이 김씨로 나온다. 중국 역사책 『신당서』를 보면 “신라 왕성은 김씨(金氏)이고, 귀인의 성은 박씨(朴氏)이며, 백성은 이름이 없다.”고 나온다. 실제로 진흥왕 때 세운 순수비는 4개가 전하고 있으나, 이름과 동네이름은 있지만, 지금과 같은 성씨는 없다.

한반도에 성씨 제도가 정착된 것은 신라가 당나라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이후이다. 통일신라가 망하던 시기 후삼국 건국 인물들이나 개국공신들도 대부분 성이 없었다. 궁예, 왕건, 견훤 등 개국군주의 성도 뒷날 정해진 것이지 개국 당시는 이름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개국시조 왕건도 본디 이름이 왕건이었다면 궁예의 부하로 있을 적에 이미 숙청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이미 고려 말 문신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한 바 있다.

한반도의 성씨는 대부분 한자를 쓰고 있다. 이런 까닭인지 한국 성씨는 이미 중국에서 성으로 쓰는 글자들이다. 영남대학교 이수건 교수는 『한국중세사연구』에서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에 군현별로 토성을 분정(分定)한 것이고, 당나라 때 『군망표(郡望表)』와 정초(鄭樵)의 『통지략(通志略)』에 나오는 성자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오늘날 부르는 본관 성씨는 대부분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3,964 성관이 사실은 중국 당나라 기록에 나오는 170개 성에 본관만 덧붙인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의 성씨이야기』도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18성씨와 근래에 나주 고을에서 광주광역시로 편입된 광산구 일부 동네 성씨를 살펴본 것이다.

오늘날[2015년 인구 통계 기준] 광주광역시의 성은 180성이고, 그 가운데 111성은 1백 명 이상 살고 있다. 조선 초기 광주 토성으로 나오는 광주채씨(蔡氏)와 박씨(朴氏)는 오늘날 다른 본관에 흡수되어 한 집도 없다.

조선 초기 광주 토반 세력이었던 고령신씨 신숙주 집안은 중앙 진출의 터전이 광주와 나주이지만 중앙 진출 뒤 한양을 중심으로 살아 신숙주의 막내동생 신말주 집안만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성리학과 모화사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성씨들의 대동화 사업이 활발해졌다. 조선 초엽의 본관성씨는 많이 퇴색하였다. 대동화 과정에서 상대의 세계가 흐트러지고 먼거리에 떨어져 살던 본관성씨들은 같은 형제 항렬로 정리하는 가운데 무리한 세계도 생겨났다. 그렇더라도 아직 한국 사회는 혈연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성씨 제도는 때때로 정치에도 이용되면서 영속될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3.28 내용변경 [개설] 태조→고려 태조, 임실군→순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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