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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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居寺― |
이칭/별칭 | 성거사지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서오층석탑2길 17[구동 16-2]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원종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일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성거사의 터.
[개설]
성거사(聖居寺)는 광주공원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언제 창건되었고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성거사 터로 추정되는 곳에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된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傳光州聖居寺址五層石塔)이 있다.
[변천]
성거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려주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의 양식이 고려 전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사찰 창건의 동기가 풍수(風水) 비보(裨補)와 관련되어 있어 풍수지리설이 크게 유행한 고려 전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광산현(光山縣) 불우조(佛宇條)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광주목(光州牧) 사찰조(寺刹條)에 모두 '성거사는 성거산에 있다.'는 단편적인 내용만 기록되어 있어 『동국여지지』가 간행된 17세기까지는 일정한 사찰로의 규모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간행된 읍지에서 기록이 사라졌다가 1899년(고종 36) 편찬된 『광주읍지(光州邑誌)』에서야 다시 성거산에 있다는 간략한 기록이 나온다.
1961년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의 전면 해체·수리 도중에 2층 몸돌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사리갖춤은 높이 15㎝로 금동으로 만들었으며, 전각 모양으로 되어 있다. 안상(眼象)이 새겨진 수미단(須彌壇) 형태의 기단 위에 난간을 두르고, 난간의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이 서 있다. 기단과 분리되는 뚜껑을 열면 나오는 몸체에는 연꽃 받침 위에 올려진 은제 사리함이 나오는데 62과의 사리가 담겨 있다. 기단과 분리되는 탑신부의 4개 면에는 각각 보살상 1구씩을 붙였다. 탑신부 위의 옥개(屋蓋)도 분리되는데 지붕의 네 귀퉁이에는 풍경(風磬)을 달았고, 지붕 모서리의 중간에는 나뭇잎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으며, 옥상에는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화려함을 이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석탑의 연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관련 설화]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성거사가 있는 성거산의 형태가 거북 모양이고, 동의 이름도 구동(龜洞) 또는 구강동(龜岡洞)으로 불렸다. 전체적인 산의 형태가 거북 모양으로 지금은 없어진 실내체육관이 있는 양동 쪽이 머리 부분에 해당되고, 탑이 있는 곳이 목 부분에 해당된다. 원래 거북은 상서로운 동물이라 거북이 광주를 떠나게 되면 광주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하여 거북이 떠나지 못하게 목덜미에 해당되는 부분에 무거운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