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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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龍洞遺蹟 |
영어공식명칭 | Ohryong-dong Sites| |
이칭/별칭 | 오룡동 유적 A지구,오룡동 유적 B지구,오룡동 유적 C지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삼소로 106[오룡동 1-7]|첨단과기로 208번길 5[오룡동 1110-8]|광산구 임방울대로 825번길 22-57[쌍암동 686-3] |
시대 | 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이정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3년 5월 3일~8월 16일 - 오룡동 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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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오룡동 유적 A지구 - 광주광역시 북구 삼소로 106[오룡동 1-7] 일대 |
현 소재지 | 오룡동 유적 B지구 - 광주광역시 북구 첨단과기로 208번길 5[오룡동 1110-8] 일대 |
현 소재지 | 오룡동 유적 C지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방울대로 825번길 22-57[쌍암동 686-3] 일대 |
원소재지 | 오룡동 유적 A지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룡동 미산마을 137번지 일대 |
원소재지 | 오룡동 유적 B지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룡동 미산마을 710번지 일대 |
원소재지 | 오룡동 유적 C지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룡동 신점마을 470번지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성격 | 터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룡동에 있는 초기 철기·삼한·삼국시대의 집터와 고려시대·조선시대의 건물지 유적.
[위치]
광주광역시 오룡동 유적 A·B지구는 오룡동 미산마을 일대에 있으며, 영산강[115.5㎞] 주변의 배후습지 및 충적지보다 약 10~20m 정도 높은 곳으로 영산강을 남동쪽으로 내려다 보는 위치이다. 오룡동 C지구는 오룡동 신점마을 일대로 불대산 지류의 저평한 계곡 사이에 형성된 낮은 구릉성 야산의 경사면에 있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광주광역시 오룡동 유적은 광주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 건설 구간에 속해 '오룡동 유적 A~C지구'의 3개 지역으로 나누어 1993년 5월 3일부터 8월 16일까지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긴급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오룡동 유적 A지구'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구덩이[수혈(竪穴)] 집터 24기, 숯가마 유구(遺構) 1기, 조선시대의 구덩이 유구 2기와 소형 아궁이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집터는 대부분 구릉의 사면에 길게 분포하고 있으며, 평면 형태는 원형 1기, 장방형 22기, 부정형 1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항아리 모양의 토기, 옹형토기, 시루편 등의 토기류가 대부분이며, 돌살촉, 가락바퀴 등 소량의 석기류와 토제품도 출토되었다.
'오룡동 유적 B지구'에서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대에 해당하는 도랑 3기가 확인되었으며, 도랑 간의 간격은 400~450㎝ 정도인데 제례와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이 있다. 도랑 내부에서는 삼각형 덧띠토기, 옹, 발, 시루,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류가 주로 출토되었다. '오룡동 유적 C지구'에서는 건물과 관련된 초석, 적심석[석축할 때 표면석의 내부에 채워지는 돌], 아궁이 시설 등이 확인되었는데 유구 노출 과정에서 수습된 청자편과 막새로 보아 일반 서민보다는 상류 계층이 사용한 건물 또는 절터로 추정된다. 유물은 암막새, 수막새, 평기와편, 청자편, 백자편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광주광역시 오룡동 유적 중 '오룡동 유적 C지구'는 유구의 중복과 파괴가 심해 중심 연대를 확정하기 어려우나 수습 유물로 보아 고려 전기부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광역시 오룡동 유적은 광주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유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오룡동 유적 A지구'에는 광주외국인학교, '오룡동 유적 B지구에는 KETI 전자부품연구원 광주지역본부, '오룡동 유적 C지구에는 첨단중해마루힐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출토된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광역시 오룡동 유적에서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집터와 숯가마, 고려시대·조선시대의 건물지 등 다양한 종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특히, 집터는 발굴 당시만 하더라도 영산강 유역에서 발굴된 적 없는 집단 취락 양상을 보이고 있어 당시 문화상을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