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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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生龍洞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산72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희태 |
소재지 | 생용동 성터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산72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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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터 |
지정 면적 | 약 2.5㎞[길이]|2~3m[너비]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 뒤편 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옛 성터.
[변천]
생용동 성터는 후백제 시기[892~936년]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성곽으로 보인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생용동 성터는 '우치산성지(牛峙山城址)'라고 불리며 1894년(고종 31) 당시 국내외 정세에 대비한 피란처로 생룡마을의 범경준, 범윤길, 범윤기 등이 축조하였다. 길이는 5리[2㎞]쯤 되고 ‘견훤대(甄萱臺)’ 또는 ‘후백제성’이라 불린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 뒤편 죽취봉 구릉 일대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광주광역시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 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발굴 조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현황]
생용동 성터는 자연 구릉을 활용하여 테뫼식과 포곡식을 혼합한 토석 혼축 복합식 산성으로, 약 2.5㎞에 걸쳐 토축과 일부 석렬 유적이 너비 2~3m로 남아 있다. 석축은 토축 위에 2~3단의 할석으로 쌓은 흔적이 있으며, 중간중간에 장대석이 섞여 있다. 생용동 성터 근처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 문화재 공간정보서비스에는 광주 생용동 토성지로 등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생용동 성터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편이 흩어져 있어 광주광역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