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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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嚴詞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가산안길 3-4[대산동 11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한백 |
건립 시기/일시 | 1807년 - 화엄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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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화엄사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8년 - 화엄사 중건 |
현 소재지 | 화엄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가산안길 3-4[대산동 117] |
원소재지 | 화엄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
성격 | 사우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김우생과 김문기를 모신 사우.
[개설]
화엄사(花嚴詞)는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우생(金佑生)[1372~1457]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배향한 사우이다. 김우생은 조선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1400년(정종 2) 박포(朴苞)의 난[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1456년(세조 2) 사육신(死六臣) 사건에 연루되었고, 1457년(세조 3) 단종(端宗)이 죽자 자결하였다. 김문기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단종 복위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이후 사육신과 함께 현창(顯彰)되고, 지역 유림들이 1807년(순조 7) 현재 삼도동에 화암사를 지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 1908년 유림들의 건의로 현재 자리에 중건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가산안길 3-4[대산동 117]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영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구조이며, 맞배지붕이다.
[현황]
화엄사 안에는 영당과 숭절당(崇節堂)과 화엄사묘정비(花嚴祠廟庭碑)가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급박한 정치 상황에 대처하였던 광주 지역 사람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