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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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城君勿齋奇公遺墟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용동길 166[신룡동 42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재훈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기진의 유허비.
[개설]
덕성군물재기공유허비(德城君勿齋奇公遺墟碑)는 입향조(入鄕祖)인 기진(奇進)[1487~1555]을 기념하기 위해 행주기씨(幸州奇氏) 덕성군(德城君) 문중에서 세웠다. 기진은 기대승(奇大升)의 아버지로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물재(勿齋)이다.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전라도 광주 지역으로 입향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기진은 1522년(중종 17)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하고, 경기전(慶基殿)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1528년(중종 23) 모친상을 당해 낙향한 뒤 더 이상 벼슬을 구하지 않고 전라도 광주목 소고룡리(召古龍里)[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거주하였다. 1590년(선조 23) 기진의 아들인 기대승이 종계변무(宗系辨誣)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을 받으면서, 기진도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에 추증(追贈)되고, 덕성군에 봉해졌다.
[건립 경위]
행주기씨 덕성군 문중이 1957년에 건립하였다. 기근섭(奇近燮)이 내용을 찬술하고 김규태(金奎泰)가 글씨를 썼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용동마을 오남재(吾南齋) 뒤편 야산에 있는 기진의 묘소 인근에 세워져 있다.
[형태]
판석을 깔고 석조 난간을 두른 비역을 조성하고, 그 안에 비를 세웠다. 장방형의 비받침 위에 비신을 꼽고, 그 위에 방형의 이수(螭首)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