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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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前議官朴台鏞施惠不忘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527 |
시대 | 근대/개항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922년 - 전의관박태용시혜불망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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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65년 - 의관국재박공유적비 건립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69년 - 박태용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41년 - 박태용 사망 |
현 소재지 | 전의관박태용시혜불망비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527 |
성격 | 불망비|유적비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박태용 |
재질 | 석재 |
소유자 | 밀양박씨 종중 |
관리자 | 밀양박씨 종중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박태용의 시혜불망비와 유적비.
[개설]
박태용(朴台鏞)[1869~1941]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빈(聖彬)이다. 아버지는 박정보,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이다. 1893년(고종 30)에 덕행으로 온릉참봉(溫陵陵參)에 천거되었고, 1897년(고종 34)에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지냈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에 중추원 의관을 지낸 박태용의 공적을 기려 1922년 10월에 유사(有司) 최성좌, 김윤홍, 서우섭 등의 주도하에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를 건립하였다가 오래되어 글씨가 마모되자, 1965년 봄에 유적비문을 짓고 1978년 봄에 밀양박씨(密陽朴氏) 종중에서 유적비(遺蹟碑)를 다시 세웠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대마을 앞 효덕로 길가 노거수 아래에 시혜불망비와 유적비가 함께 있다.
[형태]
시혜불망비는 좌대 위에 비몸을 세우고 한옥 지붕형 비갓을 갖춘 일반형 석비다. 유적비는 좌대와 한옥 지붕형 비갓을 갖춘 형태이다. 석재 구조물로 보호각 형태를 지었다.
[금석문]
시혜불망비는 앞면 가운데에 내려쓰기 큰 글자로 '전의관박태용시혜불망비(前議官朴台鏞施惠不忘碑)'를 음각으로 비제를 새겼다. 좌우에는 4언 찬문을 새겼다. 유적비는 앞면에 '의관국재박공유적비(議官菊齋朴公遺蹟碑)'라는 비제를 새겼다. 유적비문은 윤기중(尹器重)이 지었고, 글씨는 송하영(宋河英)이 썼다.
[의의와 평가]
구한말 인물의 활동과 근현대기의 추숭 활동에 대해 알 수 있어 제도사적, 향토사적 가치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