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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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陰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숙 |
건립 시기/일시 | 1868년 - 송음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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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64년 - 송음정 이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5년 - 송음정 개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1년 - 송음정 개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4년 - 송음정 개축 |
현 소재지 | 송음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
원소재지 | 송음정 - 전라남도 나주읍 나주읍 송월리 |
성격 | 정자 |
양식 | 팔작지붕 겹처마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흥성장씨 문중 |
관리자 | 흥성장씨 문중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1964년에 이건한 정자.
[개설]
장현규(張賢圭)가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 삼도리에서 초당을 짓고 지내다 사후 1868년(고종 5)에 장현규의 뜻을 기려 정자를 지었으나 퇴락하자 1955년 그 터에 중건하였다. 지금의 송음정(松陰亭)은 장현규의 증손 장동택(張東澤)이 나주에 있었던 것을 회룡마을로 1964년에 옮겨 중수한 것이다. 흥성장씨(興城張氏) 문중에서 대를 이어 관리하고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회룡마을 입구에서 암석에 적힌 '송음정' 안내를 보고 마을을 빙 둘러 뒤로 돌아올라 야산으로 접근하면 볼 수 있다.
[변천]
196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짓고 나서 1971년에 보수하였고, 1984년 8월에 골기와에서 평기와로 교체하였다.
[형태]
장석재로 기둥을 삼았으며 2층 누각 형태이다.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갖추고 있고, 측면 벽면은 빨간 벽돌로 보수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1층은 석주 10개로 세워져 있고 마루를 깔았다. 1층 건물의 양 측면은 조적으로 쌓았고, 후면도 역시 인방으로 중간 지지대를 만들어 막았다. 계단으로 오를 때에는 정면을 보면서 오르게 만들었는데, 측면 벽의 외부에 조적으로 쌓아 만들었다. 이는 본래 건물의 흔적인 2층 누각의 난간 흔적이 앞뒤로 보이고 반 정도만 남은 난간 자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재였던 계단부가 퇴락하자 벽돌쌓기로 계단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2층 주 출입구는 계단의 위치와 흔적으로 보아 본래 있었으나 훗날 나무판재로 막았다. 여러 형태와 시간이 가면서 퇴락을 막기 위한 중간 조처가 혼재되어 있다.
[현황]
정려각(旌閭閣)으로 쓰이던 건물을 인수하여 목재를 그대로 이축하였기에 2층 천장에는 연화문이 선명하고, 서까래에는 기존 건물의 단청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다소 이채로운 공간이 되었다. 또한, 정자 주위에 초목이 어지러워 정리가 필요하고 내부에는 현판들이 바닥에 놓여 있다. 비바람을 막기 위한 조처로 창문을 양철판 등으로 막아 놓았다.
정자 안에는 정면에 내걸린 현판의 글씨체보다 더 굵은 글씨체로 쓴 '송음정' 이라는 현판, 김용제(金鎔濟)의 '송음정기(松陰亭記)', 윤효중의 '송음정중건상량문(松陰亭上梁文)' 등이 남아 있어 송음정의 내력, 장현규의 행적, 건물의 중창(重創)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유교의 가치인 효에 대해 실천하였던 인물을 기억하는 공간이나, 관리가 용이하지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