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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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樵隱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숙 |
이전 시기/일시 | 1959년 - 초은정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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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9년 - 초은정에서 정각정으로 개칭 |
현 소재지 | 정각정 -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산 45-1 |
원소재지 | 초은정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
성격 | 정자 |
양식 | 팔작지붕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개설]
초은정(樵隱亭)은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효령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학동마을 뒷산 높은 언덕 위에 이호헌(李顥獻)이 지어 유유자적하였던 정자이다. 이호헌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이항로(李恒老)가 이끌었던 호서학파(湖西學派)의 최기룡(崔基龍)에게 경전을 배웠다.
[변천]
초은정은 이호헌이 다 짓지 못하여 이호헌의 유지를 이어 아들인 이상호(李相皓), 이상학(李相鶴)이 완공하고 아버지의 호를 붙여 초은정이라 하였다. 윤용구(尹用求)가 현판을 썼으며, 정자의 주인 이호헌의 10경과 이호헌의 족손(族孫)인 이경섭이 20편의 시를 읊어냈다. 또한, 고광선(高光善), 윤영구(尹英求), 오준선(吳駿善), 김희수(金喜洙), 최윤환(崔允煥), 정대현(鄭大鉉), 고한주(高漢柱) 등이 다녀가며 시를 남겼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초은정 시회(詩會)가 열려 많은 시문객이 다녀가며 시를 쓰고 기문을 남겨 이들이 활동하였던 시기를 통해 초은정이 일제강점기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1959년 이길신(李吉信)이 초은정을 이호헌의 후손으로부터 매수하여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수곡마을로 이건하면서 정명(亭名)을 정각정(政閣亭)으로 바꾸었다.
[형태]
원형 주초석, 원형 기둥, 디딤대가 놓였고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지 않으나, 시문객이 남긴 기문(記文)을 통해 당시 인물 간의 교류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