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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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得經肖像 |
영어공식명칭 | Portrait of Sim Deukky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은라 |
제작 시기/일시 | 1710년 11월 - 「심득경 초상」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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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12월 29일 - 「심득경 초상」 보물 제1488호 지정 |
현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
원소재지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성격 | 초상화 |
작가 | 윤두서 |
서체/기법 | 초상화|비단에 채색 |
소유자 | 국립중앙박물관 |
관리자 | 국립광주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제1488호 |
[정의]
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관리하였던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가 그린 심득경의 초상화.
[개설]
조선 후기 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친구였던 심득경이 1710년 8월 21일 38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1710년 11월에 그린 초상화이다. 심득경(沈得經)[1673~1710]의 본관은 청송, 호는 정재처사(定齋處士)로, 1693년(숙종 19) 생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는 기록 외에는 자세한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자로, 한성과 전라도 해남에서 살았고, 심득경은 윤선도의 외증손자로 윤두서와 심득경은 내종숙질 관계이다.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88호로 지정되었고,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관리하였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심득경 초상」은 가로 87.7㎝, 세로 160.3㎝ 크기로, 그림 속 심득경은 초록색의 세조대로 허리를 묶은 회색 도포를 입고 등받이가 없는 사각형의 의자에 앉아 얼굴을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 심득경은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쓰던 관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내관과 외관이 겹쳐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심득경은 두 손을 소매 속에 넣은 공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가죽으로 만든 초록색의 태사혜(太史鞋)를 신고 있다. 태사혜는 조선 시대 사대부가 평상복을 입을 때 신었던 신발로, 뒤축에 ‘태사문(太史文)’이라는 당초무늬 형태의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특징]
「심득경 초상」은 비단 세 폭을 이어 붙여 만든 화폭 상단에 ‘정재처사심공진(定齋處士沈公眞)’이라는 표제가 있고, 좌우에는 찬시가 쓰여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명필로 이름난 이서(李漵)[1662~1723]가 짓고, 윤두서가 쓴 찬문이 적혀 있다. 또한, 조선 후기의 문인 남태응(南泰鷹)[1687~1740]이 쓴 조선의 화가 및 서화 비평서인 『청죽화사』에는 “심득경이 죽은 후 윤두서가 심득경을 생각하며 초상을 그렸는데, 터럭 하나 다르지 않았고, 초상화를 심득경의 집에 보내 벽에 걸었더니 마치 죽은 이가 되살아 온 것 같다며 온 집안이 놀라서 울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심득경 사후에 제작된 「심득경 초상」은 17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유복(儒服) 차림의 문인 초상화들과 비교하여 풍부해진 옷주름의 표현이나 음영 처리, 얼굴의 윤곽, 깨끗한 낯빛과 입 주변의 팔자주름, 섬세한 눈과 눈썹, 성근 귀밑 털 등 사실감을 강조하였고, 담백한 색채를 사용하여 인물이 가진 정갈하고 맑은 기질을 재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심득경 초상」은 윤두서의 「자화상」, 「노승도」와 함께 18세기 조선 인물화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