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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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조선시대 지역방어 체제였던 진관체제 당시 전라도에 설치된 7개의 거진 중 하나.
[개설]
1457년(세조3) 조선의 방위 체제가 진관체제로 개편된 후 전라도에는 7개의 거진(巨鎭)이 설치되었다. 7개의 진은 광주진을 비롯하여 나주진, 장흥진, 남원진, 부안진, 순천진, 전주진 등이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군사 제도는 세조대에 확정된 5위도총부가 중앙군의 근간이었고, 각도에 설치된 병영(兵營)과 수영(水營)이 지방군의 핵심이었다.
세조는 1455년(세조 1) 각도를 몇 개의 군익도(軍翼道)로 나누고, 각 군익도는 중·좌·우익 3익을 이루도록 하는 익군(翼軍)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때 전라도는 8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거진(巨鎭)이 설치되었는데, 당시 나주도(羅州道)에 속한 광주는 나주, 남평, 능성[현 화순군 능주], 영암 등과 함께 중익이 되었고, 담양, 창평, 화순, 진원[현 장성군 진원]이 좌익, 고창과 장성이 우익이 되었다.
그러나 군익 제도는 1457년(세조 3)에 주요한 지역을 거진으로 삼고 나머지 주변 지역의 여러 진을 관할하는 진관체제로 개편되었다. 진관체제는 주요 지역을 거점으로 삼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였지만, 군사상 도의 명칭 대신 진(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거진을 중심으로 한 거점 방위 체제와 각 진의 자체 방어를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당시 광주는 나주진·장흥진·남원진·부안진·순천진·전주진과 함께 전라도 7개 거진(巨鎭) 중 하나였다. 그리고 광주진(光州鎭)은 담양·장성·진원·창평·화순·동복·능성 등을 관할하였다. 진관체제에서 보듯 전라남도 내륙인 광주 지역은 조선시대에 담양·장성 등 주변의 군사를 관할하고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1397년(태조 6)에는 광주 지역에 전라도 일대의 육군을 총괄하는 병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지금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1동에 남아 있는 고내상성지(古內廂城址)가 그것이다. 병영은 1417년(태종 17) 강진으로 옮겨졌다.
[관련 기록]
『세조실록(世祖實錄)』 9권, 세조 3년 10월 20일 기사에는 “전라도(全羅道) 나주진(羅州鎭)에는 무장(茂長)·고창(高敞)·영광(靈光)·함평(咸平)·무안(務安)·영암(靈巖)·남평(南平)을 속하게 하고 …… 광주진(光州鎭)에는 담양(潭陽)·장성(長城)·진원(珍原)·창평(昌平)·화순(和順)·동복(同福)·능성(綾城)을 속하게 하며 ……”라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