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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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部曲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고려 전기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개설]
고려시대 지방 사회 조직으로 향(鄕)·소(所)·부곡(部曲)이라는 특수 집단이 존재하였다. 향·소·부곡은 전정(田丁)이나 호구면에서 군이나 현이 될 수 없는 곳을 지칭하며 소재하는 군현에 소속되었다. 부곡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여 조세를 부담하면서도, 일반 군현의 주민과 달리 국가 직속지나 왕실과 사원의 토지를 경작하거나 각종 수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역을 추가로 부담하였다. 따라서 부곡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국가에 대해 권리와 의무를 지닌 양인 신분층이었지만, 농민층에 비해 추가의 역을 부담함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였다.
[광주의 향·소·부곡]
전라도 광주 지역은 고려 시대에 현령관이 파견된 주현(州縣)으로 3개의 부곡과 1개의 향을 관할하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광산현 조에는 양과부곡(良瓜部曲)·경지부곡(慶旨部曲)·벽진부곡(碧津部曲)이 등장하는데, 양과부곡은 현의 서쪽 15리[약 6㎞], 경지부곡은 현의 서쪽 30리[약 12㎞], 벽진부곡은 현의 서쪽 20리[약 8㎞]에 있었다. 양과부곡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경지부곡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 일대, 벽진부곡은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이다. 또 갑향(甲鄕)이라는 1개의 향도 있었는데 전라도 광주와 나주에 번갈아 가며 소속되었다. 전라도에는 부곡이 88개, 향이 51개, 소가 115개이었다. 이 중 광주의 부곡·향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보듯 4개로 전라도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만을 중앙정부가 직접 지배하였고, 중앙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속현은 주현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양과부곡·경지부곡·벽진부곡·갑향은 해양현[광주]에 예속되어 있었고, 중앙정부의 직접 지배보다는 해양현의 지배를 받았다. 다만, 부곡 내의 실제 행정은 부곡리(部曲吏)에 의해 전적으로 처리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57, 지리2, 전라도 창평현에는 “공양왕 3년에 장평 갑향(甲鄕)의 권농사를 겸하게 하였다. 갑향은 본래 창평현 속현이었는데 뒤에 나주에 이속하고 또 광주로 이속하였다가, 이에 이르러 다시 내속하였다[恭讓王三年,兼長平甲鄕勸農使.甲鄕,本屬縣,後移屬羅州,又移屬光州.至是,復來屬.].”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