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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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弘里大井井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 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공동 우물[상수도]|장승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 1리 대정 마을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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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천안 봉선 홍경사 갈기비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 320 |
성격 | 민간 의례|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이틀[음력 1월 2일] |
신당/신체 | 공동 우물|장승터|천안 봉선 홍경사 갈기비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 1리에서 매년 정월 초이튿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우물 제사.
[개설]
대홍리 대정 정제는 세 곳에서 이루어진다. 공동 우물과 장승터, 천안 봉선 홍경사 갈기비(天安奉先弘慶寺碣記碑)가 그것이다. 제관으로는 제주(祭主)와 축관(祝官)을 뽑고 마을 이장이 함께 참여하는데, 다른 마을과 달리 금기는 그다지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단지 되도록이면 부정한 일이나 상스러운 일을 삼가며 근신하고 있다가 제를 지낸다. 정제의 비용은 집집마다 쌀이나 돈을 나누어 내어 충당하고 제물로는 떡, 삼색과실, 포, 술 등을 올린다.
[연원 및 변천]
대정(大井)의 우리말 이름은 ‘한우물’이다. 이는 마을에 큰 우물이 있기 때문에 유래한 지명인데, 예전에는 이 우물 하나에 의지하여 식수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대정 마을의 공동 우물은 예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을 뿐 아니라 몇 년에 걸친 큰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옛날에 길을 지나던 스님이 영기(靈氣)가 있는 우물이니 마을에서 잘 모시는 게 좋겠다고 일러 주어 정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현재 이 우물은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덮어 버려 원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우물을 덮기 전에는 샘과 상수도 시설 두 곳에서 제를 지냈으나 근래에는 상수도에서만 제를 지낸다.
[신당/신체의 형태]
대홍리 대정 정제의 신격은 물을 주관한다고 여겨지는 용왕신이다. 그래서 마을 내에 있는 공동 우물에 제를 지낸다. 이 우물은 1960년대 즈음에 충청남도 지사가 마을을 방문하여 물이 좋다고 칭찬하면서 기금을 보내 주어 뚜껑을 덮었다고 한다. 이후에 우물 옆에 40m 정도의 파이프를 설치하여 뒷산으로 물을 끌어올려 상수도를 만들고 각 가정으로 흘려서 보내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제를 지내는 또 하나의 장소인 장승터에는 예전에 장승도 서 있었으나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장승 옆에는 300~400년 된 고목이 함께 있었으나 이 나무 역시 말라 죽었다. 장승이 있던 자리에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전에는 장승제도 함께 모셨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정 마을은 홍경원(弘慶院)과 홍경사(弘慶寺)가 있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높이 214㎝, 폭 1m의 천안 봉선 홍경사 갈기비가 세워져 있다. 홍경사비(弘慶寺碑)라고도 부르는 이 비는 고려 때 현종 17년 한림학사인 최충(崔沖)이 어명을 받아 비문을 짓고 서예가인 백현례(白玄禮)가 글씨를 썼다. 현재는 국보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비는 공동 우물, 장승터와 더불어 민간 신앙의 대상물로서 치성을 받아 정제를 지낼 때 함께 제물을 차린다. 또한, 홍경사비에는 후사가 없는 사람이 비석 위에 갓처럼 씌워 놓은 돌인 갓석에 돌을 던져서 세 개를 올려놓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전한다.
[절차]
대홍리 대정 정제는 장승터와 공동 우물[현재는 상수도], 그리고 홍경사비, 이렇게 세 곳에서 차례로 이루어진다. 제주와 축관, 이장은 각각의 신앙 대상에 제물을 차려 놓고 헌작(獻爵)·독축(讀祝)을 하고 재배(再拜)한다. 제를 마치면 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사르는 흰 종이인 소지(燒紙) 한 장을 집마다 올려 주며 가정이 무탈하기를 기원한다. 이날 대정과 이웃한 홍경 마을에서도 정제를 지내는데, 먼저 지내는 마을이 좋다고 하여 예전에는 서로 먼저 지내려고 앞을 다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