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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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자는 자야(子野)이고, 호는 매계(梅溪)이다. 부인 문씨(文氏)는 광주 갑향(光州甲鄕) 사람인데, 1388년(우왕 14) 왜구에게 붙들려가는 도중 몽불산(夢佛山) 극락암 근처에서 순결을 지키기 위해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이에 왜구는 그의 큰아들을 죽이고, 부인은 나무덩굴에 걸려 오른팔이 부러진 채 구출되어 『고려사』에 열녀로 입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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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 역사에 등장하였던 도살성(道薩城)이라는 이름부터 군사적 요충지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천안은 역사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천안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알려진 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천안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고려 때인 930년(태조 13)이다. 고려 태조가 천안의 왕자봉에 올라 지세를 살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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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나무꾼들이 편을 나누어 공을 치며 놀던 전래 놀이. 공치기는 마을에 따라서는 장치기라고도 부른다. 공치기는 두 패로 편을 갈라 각자 작대기를 가지고 나무로 깎은 공을 상대편의 진영으로 쳐내어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필드하키와 흡사한 놀이로 예전에 산으로 땔나무를 하러 가거나 소꼴을 베러 다닐 때 널리 성행했던 놀이이다. 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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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서 전해 내려오는 금굴평에 관한 지명 유래담.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의 왕주봉 일대는 예부터 금이 나는 산지로 이름이 나 있었다. 직산 금광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제28권 충렬왕(忠烈王) 2·3년 조에 나타나는데, 원나라에서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금을 채취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금굴평 유래」는 이러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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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부터 1413년까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청주목 목천현 조에 의하면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인데, 신라에서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목주(木州)로 고쳐 청주(淸州)의 임내로 삼았다가,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던 것을,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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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전해 내려오는 목주녀의 효행담.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해져 내려오는 목주(木州)[지금의 천안시 목천읍] 효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의붓어머니의 구박을 참고 인내하며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나 아버지마저 의붓어머니의 모략에 넘어가 진심을 몰라주자 딸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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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에 전해 오는 목주녀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신라의 가요. 「목주가(木州歌)」는 신라의 가요(歌謠)로 알려져 있으나 작자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1449~1451] 악지(樂志)에는 「목주」로, 『증보 문헌 비고(增補文獻備考)』[1903~1908] 악고((樂考) 17권과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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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1277년(충렬왕 3)에 몽고가 직산에서 금을 채굴하게 한 사건. 몽고와 강화한 이후 고려의 자주성은 많은 손상을 입었다. 원은 고려 조정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나오게 하고 고려의 왕을 원의 공주와 혼인시켜 부마국으로 삼았다. 고려 왕실의 호칭과 격은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바뀌었으며, 아울러 관제도 개편되고 격도 낮아졌다. 원은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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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전통 시대의 역. 성환역은 서울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내려가는 중간 기착지로 교통의 요지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역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에 있는 6개의 도찰방역 중 하나로 여러 개의 속역을 관리하였다. 역참제도는 육로교통의 필수 요건이었다. 요로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역이 존재하게 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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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에 전해 내려오는 유청신의 인물담.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에는 고려 후기에 재상을 지낸 영밀공(英密公) 유청신(柳淸臣)[1257~1329]의 불천지위(不遷之位) 사당이 있다. ‘불천지위’란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를 말한다. 유청신에게는 충효 정문이 내려졌으나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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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건이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지형을 이른 말로 천안부 설치의 계기가 된 용어. 후삼국통일 전쟁 중에 왕건은 풍수지리설을 통하여 각 지방의 호족이나 일반 백성의 인심을 자신에게 모으는데 이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요충지를 확보하고 그에 따라 확대된 전선을 연결하는 데에도 풍수지리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之勢)가 곧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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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천안 광덕사에 호도를 전래했다고 전하는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본래 이름은 유비(柳庇), 시호 영밀(英密)이다. 공민왕 때 좌정승을 지낸 유탁(柳濯)의 할아버지이다. 유청신(柳淸臣)[1257~1329]은 장흥부(長興府) 고이 부곡(高伊部曲) 출신으로, 선대도 모두 다 부곡 아전이었다. 당시 부곡 아전은 비록 공로가 있어도 5품을 넘지 못하였는데, 유청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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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편찬된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산업, 문화, 풍속 따위를 기록한 책. 천안 지역의 읍지는 여러 종류가 편찬되었다. 먼저 천안 지역의 사정이 수록된 지리지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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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직산 지역에 설치된 고려 및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직산현 조에 보면 직산현은 “동쪽으로 진천현(鎭川縣) 경계까지 33리[12.96㎞]이고,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경계까지 21리[8.247㎞]이다. 북쪽으로 같은 군(郡) 경계까지 25리[9.818㎞]이며, 남쪽으로 천안군(天安郡) 경계까지 10리[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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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북동부에 있는 시.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현재의 천안에 천안부(天安府)를 설치하면서 유래했다. 『고려사(高麗史)』 ‘세속’(世俗)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의 성씨와 똑같은 임금 왕(王) 자 모양의 천안의 진산(鎭山) 왕자산(王字山)에 올랐을 때 풍수술사 윤계방이 “이곳은 삼국의 중심으로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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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는 고려 충렬왕 때 영밀공(英密公) 유청신(柳淸臣)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호두의 묘목과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고향인 천안시 광덕에 심으면서 전파되었다고 알려진 것이 1935년부터이지만 아직 정확한 근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호두과자는 1934년 대흥동 천안역 앞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던 조귀금(趙貴金)·심복순(沈福順) 부부가 호두를 첨가한 실제 크기의 호두 모양 과자를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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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천안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인물.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삼국 시대부터 효 사상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오늘날의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의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에서 『효경(孝經)』은 중요한 교수 과목이었다. 통일 신라 시대 원성왕 때 실시한 독서삼품과에서도 『효경』은 시험의 필수 과목이었다. 고려 시대 국립대학인 국자감(國子監)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