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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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階伯將軍遺蹟傳承地 |
영어의미역 | The Historic Sites of General Gyebae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산4 외 27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12월 29일 - 계백장군유적전승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7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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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계백장군유적전승지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유허지 |
건립시기/연도 | 660년경 |
관련인물 | 계백|김유신 |
높이 | 6.5m |
둘레 | 47.6m |
면적 | 69,026㎡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산4 외 27필 |
소유자 | 논산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계백장군 유허지.
[건립경위]
백제 말기인 660년(의자왕 20)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 오자, 계백 장군은 황산벌에서 5천여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맞서 싸웠다.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가족들이 적의 노비가 되는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부인과 자식을 죽이고 떠났다고 한다. 계백 장군은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수적인 열세로 말미암아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김유신이 계백 장군의 시체를 찾도록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했는데, 이는 부근의 백제 유민들이 몰래 시신을 거두어 가장곡에 급히 가매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뒤 오랫동안 무덤을 찾지 못하다가 1966년 비로소 찾게 되었지만 발견 당시에는 봉분이 반 이상 무너져 석곽이 노출된 상태였다. 이에 부적면 사람들이 보수하여 지석을 안치하고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직경 15.15m, 봉분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계백장군유적전승지는 부적면 신풍리 산4번지 외 27필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근처 충곡리에는 계백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곡서원이 있고, 무덤 동남쪽 연산면 신양리와 신암리 사청벌 일원은 계백 장군이 최후를 맞은 격전지인 황산벌이다. 현재 계백 장군 묘역에 대한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