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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동 사라리 줄다리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78
한자 聖省洞沙羅里-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사라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멸 시기/일시 1980년대 중반 - 성성동 사라리 줄다리기 중단
놀이 장소 성성동 사라리 줄다리기 - 충청남도 천안시 성성동 사라리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음력 1월 14일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성성동 사라리 마을에서 음력 정월 열나흘에 행했던 민속놀이.

[개설]

충청남도 천안시 성성동 사라리 마을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화합과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바라며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흘에 줄다리기를 했다.

주민들의 뜻을 모으는 일은 짚을 모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올해도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집마다 추렴해 모은 짚으로 줄을 드린다. 이윽고 열나흘날 저녁, 보름달이 떠오르면 주민들은 남녀 두 편으로 나뉘어 안간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연원]

마을에서 언제부터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을의 나이든 노인들은 한해 농사의 풍년과 마을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집집마다 추렴해 짚이 모아지면 뒷동산의 넓은 공터에 쌓는다. 청년들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길고 가늘게 동아줄을 꼰다. 동아줄이 여러 발이 모아지면 한 줄로 굵게 꼬기 시작한다. 여러 발의 새끼줄이 뒤엉켜 만들어진 암줄과 수줄은 둘레가 한 아름이나 되고 길이도 각각 30여m에 이른다.

암줄과 수줄이 완성되면 두 줄을 하나로 이어서 가운데에 비녀목을 지른다. 이때 비녀목은 두 줄을 고정하는 역할을 하며 줄의 규모가 큰 만큼 비녀목도 2~3m 길이로 제법 큰 편이다. 몸줄에는 수십 가닥의 동아줄을 늘여서 사람들이 쉽게 잡아당길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를 당김줄이라 한다.

[놀이 방법]

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청년들은 앞놀이라 하여 암줄과 수줄을 어깨에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흥을 돋운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안성맞춤이다. 암·수 몸줄의 머리[고] 위에는 무동을 태운다. 무동은 열 살 전후의 남자아이로 색동옷을 입히고 머리에 족두리를 씌우고 댕기를 늘여서 마치 여자아이처럼 분장을 시킨다.

이처럼 앞놀이로 흥을 한껏 돋운 뒤에 전나무가 있는 공터에 줄을 가져다 둔다. 본격적인 놀이는 보름달이 떠오를 즈음에 시작된다. 남녀 두 편으로 나뉘어 진행을 하는데 이때 혼인을 하지 않는 미성년은 모두 여자 편에 선다. 즉 남자 편은 기혼 남성들로만 구성이 된다.

승부는 3판 2승으로 판가름하며 심판의 징소리에 한껏 귀를 기울인다. 여자 편이 이기면 그 해 보리 풍년이 들고, 남자 편이 이기면 쌀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다. 어느 편이 이겨도 풍년이 드는 것은 같기 때문에 으레 남자들이 져주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성성동 사라리 줄다리기는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했다. 영성·승인동·방깨울·수레터·밤골·신갈 등에서 수백 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승부가 나면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신명나게 풍물을 치며 놀았다. 암줄과 수줄은 동구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한 곳에 잘 감아 둔다. 주민들은 이 줄이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현황]

충청남도 천안시 성성동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2년에 한 번씩 줄다리기를 했다. 하지만 인근에 공단이 들어서고 농토가 공장 부지로 편입되면서 짚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뿐만 아니라 집과 농토를 잃은 주민들이 객지로 떠나면서 더 이상 줄다리기를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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