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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리 구억말 산신제와 정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96
한자 石橋里-山神祭-井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석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산제당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석교리 구억말 지도보기 뒷산
의례 장소 공동 우물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석교리 구억말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
신당/신체 산제단|공동 우물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구억말에서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석교리 구억말 산신제와 정제는 대동계의 주관으로 거행된다. 제관은 이장, 반장, 새마을 지도자 등이 맡는다. 본래는 부정이 없고 가족이 단출한 가정에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이 닿는 정결한 제관을 선출하여 제를 주관하였으나, 언제부턴가 서로 제관이 되기를 꺼려 마을 임원들이 의무적으로 제관이 된다.

제삿날이 임박하면 제관의 집에는 황토를 펴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예전에 산신제와 정제에는 매우 엄격한 금기가 수반되었다. 제관은 사흘 동안 찬물로 목욕재계하였고,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두문불출한 채 정성을 드렸다. 마을에서도 제사 당일에는 비린 음식이나 육류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산신제를 지내는 줄 모르고 마을로 들어온 외지인들은 제사가 끝날 때까지 나갈 수가 없었다.

석교리 구억말 산신제와 정제의 비용은 대동계의 기금으로 충당한다. 예나 지금이나 마을로 이사를 오는 주민들은 신입례로 정해진 금액을 대동계에 납부해야 비로소 정식 주민으로 인정받는데, 이 기금을 자산으로 비축해 두었다가 제물을 준비한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통돼지 한 마리를 잡아 그 머리와 꼬리는 산신제의 제물로 차리고 돈육은 제를 마친 뒤 마을 잔치에 사용한다. 이 밖에 산신제와 정제에 쓰이는 제물로는 백설기, 삼색과실, 메, 메밀묵 등이 있다.

[연원 및 변천]

구억말은 1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다. 산신제와 정제의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이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산신제와 정제를 지내 왔다고 한다.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주관한다고 믿는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아울러 마을의 식수원인 공동 우물에도 제를 지내며 주민들의 단합을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구억말 동제당은 상당(上堂)과 하당(下堂)의 이중 구조로 구성된다. 상당은 마을 뒷산에 있는 산제당으로, 신격은 산신이다. 이 마을의 뒷산은 성거읍의 주산이 되는 성거산 줄기이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제장(祭場)에 별도의 신위나 신체를 봉안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하당은 마을의 공동 우물로서 그 신격은 물을 주관하는 용왕신이다.

[절차]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정제를 지낸다. 산신제는 유교식 제례에 따라 강신(降神)-분향(焚香)-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 순으로 진행된다. 제를 마치면 산제당 옆에 있는 바위에도 간단하게 제를 지내는데, 제를 마치면 메밀묵을 동서남북 사방에 풀어 버린다. 그리고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일]로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만동 소지(萬洞燒紙)를 불사르고 하산한다. 마을로 내려오면 공동 우물에 가서 제물을 차리고 정제를 지낸다. 절차는 산신제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맨 마지막에는 역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 그리고 주민들의 건강을 축원하는 만동 소지 한 장을 불사른다.

[부대 행사]

석교리 구억말 산신제와 정제를 마치면 이튿날 주민들이 모여 대동계의 주관으로 마을 잔치를 베푼다. 예전에 가구 수가 적었을 때는 제물을 호수대로 똑같이 나누어 먹었으나 마을이 커지면서 통돼지를 잡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잔치를 벌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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