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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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箕永 |
이칭/별칭 | 민촌(民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윤성희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5월 29일 - 이기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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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07년 - 이기영 천안 상리 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이기영 문단 등단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 이기영 월북 |
몰년 시기/일시 | 1984년 8월 9일 - 이기영 사망 |
출생지 | 이기영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시 |
거주|이주지 | 이기영 이주지 - 충청남도 천안시 유량동 정자말 |
묘소 | 이기영 묘소 - 평양 |
성격 | 문인|소설가 |
성별 | 남 |
본관 | 덕수 |
대표 경력 | 북한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 |
[정의]
충청남도 천안에서 성장한 사실주의 문학가.
[개설]
이기영(李箕永)[1895~1984]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민촌(民村)이다. 1937년 월간지 『조광』 5월호에서 “출생지는 아산이지만 두세 살에 떠났기 때문에 천안을 고향으로 여긴다.”라고 적고 있다.
[활동사항]
1895년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에서 출생했지만 1898년경 천안으로 이사와 유량동과 안서동 일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천안 초등학교의 전신인 상리 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이듬해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해 타지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3년 동안 천안 호서 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24년 상경하여 『개벽』지 현상 문예에 「오빠에게 비밀 편지」로 등단하여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카프]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으며, 광복 후 월북했다. 북한에 있는 이기영의 직계 혈육은 3남 1녀로 알려져 있다.
[저술 및 작품]
문단 등단작 「오빠의 비밀 편지」 이후 「서화」·『인간 수업』·『고향』·『신개지』·『봄』 등을 발표했으며, 희곡 작품으로 「그들의 남매」·「월희」 등이 있다. 이기영은 북한에서 장편 소설인 『땅』을 비롯해 『두만강』 1·2부 등을 발표했고, 인민상을 수상했다. 이기영은 집단성과 프로 문학의 전형을 보여 주는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1930년대 이후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4년 8월 9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묘소]
북한 평양의 혁명 열사능에 묻혔다.
[상훈과 추모]
천안 지역 문인을 중심으로 이기영이 살았던 유량동 옛집을 복원하고 기념관 및 기념비를 건립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기영은 일제하 한국 소설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고향』 등을 남겼지만 월북 문인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해 왔다. 하지만 해금된 이후 고향 천안 지역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그의 추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천안 지부에서는 민촌 문학 관련 세미나 개최, 한국 문인 협회 천안 지부에서는 매년 5월 민촌 백일장을 열어 이기영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