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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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鄭彦郁影幀-抄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동남리 36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규완 |
제작 시기/일시 | 1775년 -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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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0월 30일 -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정림사지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동남리 364] |
성격 | 초상화 |
작가 | 이유덕 |
관리자 | 정림사지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언욱의 영정과 초본.
[개설]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扶餘鄭彦郁影幀및抄本)은 2007년 10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정언욱(鄭彦郁)은 1741년(영조 17)에 명경과에 급제한 뒤에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부사직(副司果), 낭청(郞廳), 공조좌랑(工曹佐郞)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형태 및 구성]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은 세로 113㎝, 가로 63㎝의 비단에 채색한 관복을 입은 정언욱을 그린 영정, 그리고 세로 31.7㎝, 가로 42.8㎝의 기름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밑그림인 초본(草本)의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정언욱 영정의 경우는 녹색(綠色) 단령(團領)을 입고,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있는데 , 흉배(凶背)의 단학(單鶴)으로 보아 3품 이하의 문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손은 공수(拱手)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은 정면이 아닌 반측면을 향하고 있고, 몸과 의자는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의자에는 표범 가죽이 깔려 있다.
초본은 세로를 3등분으로 접어서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림 중앙에는 탕건(宕巾)을 쓴 얼굴을 그렸으며, 좌우의 별지(別紙)에는 초본의 주인공과 화가에 대한 간단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초본 우측에는 “숙종대왕삼십구년계사윤오월초이일인시생 영종대왕오십일년을미작 화수평양이유덕(肅宗大王三十九年癸巳閏五月初二日寅時生 英宗大王五十一年乙未作 畵手平壤李有德)”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초본 좌측에는 “영종대왕오십일년 청건륭사십년재오주시시년육십삼초본 정유소서일서년육십오(英宗大王五十一年 淸乾隆四十年在吳州時時年六十三草本 丁酉小署日書年六十五)”라고 쓰여 있다. 초본을 통하여 정언욱이 1713년(숙종 39)에 태어났고, 정언욱이 63세일 때인 1775년(영조 51)에 함경도 평양 출신 화가 이유덕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징]
초본은 그림의 주인공인 정언욱이 살아 있을 때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본 좌우에 기재된 정보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린 화법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다. 다만 영정은 이유덕이 그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정언욱이 살았던 시대와 복색이 맞지 않기 때문에 조선 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은 영정과 초본뿐만 아니라 화기(畵記)가 함께 있어 조선 후기 초상화를 그리는 기법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