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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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彦郁 |
영어공식명칭 | Jeong Eonuk |
이칭/별칭 | 사문(士文),퇴어(退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정언욱(鄭彦郁)[1713~1787]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사문(士文), 호는 퇴어(退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유석(鄭有錫)이고, 할아버지는 정관주(鄭觀周)이다. 아버지는 정용서(鄭龍瑞)이고, 어머니는 권이정(權以廷)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심우적(沈禹績)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이다.
[활동 사항]
정언욱은 1713년(숙종 39) 부여에서 태어나 1741년(영조 17)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의 부정자를 거쳐 사변가주서를 지냈고, 1746년에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개수 과정에 참여하였다. 1749년 성균관전적을 거쳐 1750년 공조좌랑을 지냈고, 1766년 사간원정언, 1770년 사헌부지평, 1771년 이조좌랑 등을 지냈다. 1772년 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종부시정을 지냈고, 1773년 강동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정언욱은 1780년(정조 4) 사간원헌납과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1783년에는 사간원헌납으로 있으면서 화완옹주(和緩翁主)의 출륙(出陸)이 부당함을 논하였다. 이후 사헌부장령을 거쳐 1785년 승정원동부승지에 발탁되었고, 1786년 공조참의가 되었으나 이듬해인 1787년(정조 11) 사망하였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