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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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im Buy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63년 5월 3일 - 김부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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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80년 - 김부열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24일 - 김부열 시민군 활동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24일경 - 김부열 사망 추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6월 12일 - 신체가 심하게 훼손된 채 주남마을 뒷산에서 발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6월 - 5.18구묘지 안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학교|수학지 |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의재로33번길 33[학동 671-1] |
활동지 | 주남마을 -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학생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김부열[196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김차남이다.
[활동 사항]
김부열은 1980년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김부열은 5월 21일 친구의 집에 간다고 한 뒤 행적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와 화순군을 오가던 무고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격을 맞아 사망하였다. 계엄군은 광주시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주민들에게도 총격을 가하였다. 김부열은 시민군의 일원으로 주남마을 야산에서 계엄군과 교전을 벌이던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을 나간 이후 김부열의 행적을 알 수 없었는데, 5월 23~24일 사이에 계엄군의 총에 사살당했다는 것이 봉쇄 작전 임무를 인계받은 군인에 의해 밝혀졌다.
이 사실을 모르고 김부열을 찾아 헤맨 가족들은 1980년 6월 12일 주남마을 뒷산에 매장되어 있는 시신을 확인하라는 광주시청의 연락을 받고 갔다. 하지만 한쪽 팔이 잘려나가고 목과 가슴이 심하게 훼손되어 시신 확인이 어려웠던 상태에서 가족들은 사타구니 사이의 점으로 간신히 김부열임을 확인하였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20여 일 동안 산중에 버려졌던 김부열은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묻혔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29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