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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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本將帥-鏢槍-異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영순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전해 오는 정유재란 때 왜장을 잡은 이인의 이야기.
[개설]
「일본 장수를 표창으로 잡은 이인」은 정유재란(丁酉再亂)[1597] 당시 용맹한 왜장 때문에 싸움에서 지게 되었을 때 단신으로 나가 표창 하나로 왜장을 잡은 이인(異人)의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일본 장수를 표창으로 잡은 이인」은 단국 대학교 교수 강영순과 구비 문학반 학생들이 2010년 2월 1일 정열모[71세, 남,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상덕리]에게 채록하여 성환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구비 설화』에 수록하였다.
[내용]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충청도 직산(稷山)은 명나라 군과 일본군의 격전지였다. 당시 중국 명나라의 무장 이여송(李如松)[?~1598]은 용맹무쌍한 왜장(倭將)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장의 목을 쳐 오면 1만 냥을 준다고 공고하였다. 하지만 명나라 병사나 조선 병사나 싸우는 족족 몇 합을 겨루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때 베적삼을 입은 남자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오더니 자신이 왜장의 목을 쳐 오겠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말도 타지 않고 맨몸으로 절뚝절뚝 걸어 나갔다. 왜장은 말을 타고 나왔는데, 남자가 서서 양쪽 손을 한 번 휘 저으니 어찌 된 일인지 왜장이 말에서 뚝 떨어졌다. 그러자 남자가 가서 왜장의 칼을 뽑아 목을 쳐서 가지고 왔다. 이여송이 매우 기뻐하며 상금을 주자 남자는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 한 일이니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어떻게 해서 왜장을 죽였는지 이여송이 묻자 남자는 말없이 왜장의 눈을 가리켰다. 왜장의 양쪽 눈에는 표창이 박혀 있었다. 직산의 성거산(聖居山) 맞은편에 사는 남자는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방 안에서만 지냈는데, 하도 무료하여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바늘로 파리를 맞추다가 나중에는 파리똥도 맞추게 되었다. 조금씩 거동을 하며 걸을 수 있게 되자 아버지에게 표창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날아가는 새를 맞혀 떨어뜨리곤 하였다. 남자는 아버지와 형이 모두 의병으로 나가서 죽으니, 그 원수를 갚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자초지종을 다 말하고 나서 남자는 아무런 상도 받지 않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모티프 분석]
「일본 장수를 표창으로 잡은 이인」은 국가에 변란이 있을 때 나라를 구제한 이인의 이야기이다. 이인은 평상시에는 일상인 속에 묻혀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유사시에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다가 이내 다시 잠적하는 인물이다. 이여송의 군대조차도 감당 못하는 왜장을 소아마비의 무명인이 퇴치했다고 함으로써 조선 민중의 간절한 소망과 꿈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