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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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令監 |
이칭/별칭 |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혹 떼러 갔다 혹 붙인 영감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
집필자 | 강영순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 전해 오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
[개설]
「혹부리 영감」은 어느 가난한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에게 거짓말을 하여 혹을 떼고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난한 혹부리 영감을 따라한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은 혹을 떼기는커녕 도리어 혹 하나를 더 붙였다.
[채록/수집 상황]
「혹부리 영감」은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89년 한문석[71세, 남,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 수향리]에게 채록하여 1994년 발간한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에 가난한 김 혹부리 영감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김 혹부리 영감이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날이 그만 저물어서 집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숯가마 터를 발견한 김 혹부리 영감은 숯가마 터에 들어가 쉬면서 노래 한자락을 하였는데, 그 목소리가 청아하였다. 한밤중에 도깨비들이 올라와 김 혹부리 영감을 둘러싸고는 노랫소리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물었다. 김 혹부리 영감은 자신의 혹 속에서 노랫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자 도깨비들이 뭐든 나오는 도깨비방망이를 주며 혹과 바꾸자고 하였다. 그 덕에 김 혹부리 영감은 혹도 떼고 도깨비방망이를 갖고 귀가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옆 마을에 사는 박 혹부리 영감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부자가 된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김 혹부리 영감이 나무하러 갔다가 도깨비들을 만난 사연을 들려주었다. 박 혹부리 영감은 김 혹부리 영감처럼 숯가마 터로 찾아가 노래를 부르며 도깨비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도깨비들이 몰려와 박 혹부리 영감에게 노래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물었다. 박 혹부리 영감이 혹에서 나온다고 하자 도깨비들은 또 속을 줄 알았냐며 박 혹부리 영감에게 김 혹부리 영감에게서 뗀 혹을 하나 더 붙여 주었다. 박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방망이는커녕 혹만 하나 더 붙이고 내려왔다.
[모티프 분석]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방망이’ 설화에 혹부리 영감의 응보담이 결합한 이야기이다. 행운을 얻은 사람을 그대로 따라하다가 실패한다는 모방담이기도 하다. 또한 웃음을 자아내기에 소화(笑話)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나타나는 설화 유형이다. ‘혹 떼러 갔다가 혹만 붙이고 왔다.’는 속담도 이 설화에서 연원한 것으로 보인다. 원형으로는 보물 방망이를 얻어 잘된 형 ‘방이’를 따라하다가 동생이 망했다는 신라의 「방이 설화」를 들 수 있다. 「방이 설화」는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수록되고,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동사강목(東史綱目)』[1778]에도 수록되었다. 일본의 도깨비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정유재란(丁酉再亂)[1597] 때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국한 강항(姜沆)[1567~1618]의 「유계(廇戒)」에 의하면, 「방이 설화」는 필리핀 루손 섬에서 일본에 전파되었으며, 그것을 다시 강항이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우언화(寓言化)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