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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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砬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종식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보(眞寶). 고려 말의 충신 조용(趙庸)의 7세손이다. 조진형(趙震亨)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조립(趙砬)[1584~?]은 어려서부터 출중하였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섬기면서 의복을 손수 손질하여 봉양하였다. 36세 되던 해에 할머니가 죽자 통곡하며 슬퍼함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고, 53세 되던 해인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마을이 피폐해지자 처자는 두고 노모를 업고 산속으로 들어가 난을 피했다. 오랑캐가 조립을 검거하려 했으나 노모 봉양의 효성에 감격하여 그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61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살며 애통해 하였다. 71세에 이르러 아버지가 죽은 지 60년이 되었을 때, 어려서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지 못한 것을 애통히 여겨 기일에 초상을 치를 때와 똑같이 상복을 입고 슬퍼하며 술과 고기를 멀리하였다.
이에 관찰사가 조립의 행실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에서는 세금과 부역을 면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위계(位階)를 내렸다. 조립이 죽은 뒤 아들 조진형이 효자문을 내려줄 것을 청하였고, 이어서 황구하(黃龜河)가 별도로 이 사실을 적어 올려 1655년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상훈과 추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가산리에 정려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