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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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昞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식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아버지는 진사 이억(李億)이며, 아들은 이홍기(李弘基)이다.
[활동 사항]
이병(李昞)[1626~1670]은 천안 원서면[현 풍세면 일부 지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행실이 돈독하여 부모를 효도로 섬겼다.
이병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6년 동안 시묘를 살면서 애통해 했다. 당시에 신묘한 샘물이 솟고 기르던 개가 꿩을 잡아 와서 공양하는 등 이상한 일들이 있었는데, 이병의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칭송했다고 전한다.
이병은 효심 못지않게 충의 또한 지극하였다. 인조·효종 대에 국상(國喪)이 있으면 소복을 입고 삼년상을 마쳤다. 이에 사람들이 이병을 천거하여 1670년(현종 11) 조정에서 관직을 제수하였지만 이병은 그해 6월에 죽었다. 아들 이홍기가 또 글을 올려 은전을 빌었는데, 1676년(숙종 2) “이 사람의 행실은 천성에서 나왔으니 특별히 우대하여 은전을 추증하여 그의 충성과 효도를 표창하노라.”라는 하교와 함께 선무랑(宣武郞)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추증되었다.
[묘소]
묘소가 원서면 대정촌(大井村)[현 천안시 풍세면 용정리]에 있었다고 전하나 찾을 수가 없다.
[상훈과 추모]
1676년(숙종 2)에 선무랑 의금부 도사에 추증되었다. 정려가 신리(新里)[현 천안시 구룡동]에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