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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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道爀 |
이칭/별칭 | 사장(士章)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식 |
출생 시기/일시 | 1713년 - 김도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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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84년 - 김도혁 사망 |
묘소|단소 | 김도혁 묘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화덕리 |
정려 | 김도혁 정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
성격 | 효자|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강릉(江陵)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장(士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일우(金一宇), 할아버지는 김수경(金壽慶)이다. 아버지는 선전관을 지낸 김성구(金聖耈),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이다.
[활동 사항]
김도혁(金道赫)[1713~1784]은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선전관으로 있던 아버지가 남의 허물을 원통하게 뒤집어쓰고 멀리 유배되자,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두고 편히 집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버지의 적소에 쌀을 져다 날랐다. 500리나 떨어진 거리였지만 10년 동안이나 한결같았다고 전한다. 김도혁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벗겨드리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는 생각에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써서 탄원한 끝에 결국 아버지를 구하였다.
김도혁은 늦은 나이에 기로과(耆老科)[조선 시대에 60세 이상의 선비만 보던 과거]에 급제한 후, 서산(瑞山)의 군수, 대정(大靜)의 현감으로 부임하여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그의 선정을 베푼 치적이 조정에 알려져 포상으로 수의를 하사받는 등 영예를 누렸다. 1784년(정조 8) 사망할 때까지 벼슬은 지방관에 그쳤지만, 성심을 다하여 충과 효를 다하면서 주어진 직분을 극진히 수행한 인물로 만인의 귀감이 되었다.
[묘소]
천안시 동남구 동면 화덕리의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에 김도혁의 행적을 기리는 정려가 있다. 이는 1819년 9월 28일에 내려진 정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