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최은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68
한자 崔殷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최은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최은식 원곡면사무소 앞 독립 만세 시위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최은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3년 - 최은식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출생지 최은식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은식(崔殷植)[1899~1960]은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사람이다. 그 외 가계나 학력, 이주 등의 사실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1919년 경기도 안성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최은식은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元谷面)에서 수천 군중이 모인 가운데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며 선언식을 했다. 그리고는 원곡면사무소에 불을 질러 훼손하고 다시 양성면(陽城面)으로 이동하였다. 양성면의 면민들을 규합하여 양성면 소재 주재소와 우편소의 건물은 나중에 새 정부가 들어오면 사용할 것이라면서 그대로 보존하고 문서와 기구만을 불질러 폐기하였다. 또한, 일본인 대금업자 융수지(隆須知)의 상점을 파괴한 뒤 해산하였다. 최은식은 이날의 활동에서 홍찬섭(洪燦燮)과 더불어 주동 역할을 하였다.

그 후 최은식은 체포되어 주모자라는 이유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최은식이 주동한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체포된 인원은 수백 명을 넘었으며 고문치사한 사람이 7명이었고, 복역한 사람은 126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제2권(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