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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15
한자 朴相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 7월 20일연표보기 - 박상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 박상규 사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 - 박상규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박상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박상규 출생지 - 충남 천안군 병천면 탑원리 15번지 지도보기
활동지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상규(朴相圭)[1880~1919]는 1880년 7월 20일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 탑원리 1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되었다. 아우내 장은 충청북도 청주와 진천, 그리고 천안군의 장꾼이 모이는 큰 장이었다. 장날인 4월 1일 약 3,000여 명의 장꾼들이 아우내 장터에 모였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주모자 중의 한 명인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박상규를 비롯한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군중에게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의 야만적인 발포가 또다시 있었고, 이로 인해 박상규가 사망하였다. 이날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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