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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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球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7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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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김구응 대한민국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김구응 출생지 -
충남 천안군 갈전면 가전리 9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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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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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구응(金球應)[1887~1919]은 1887년 7월 27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가전리 9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1일 갈전면[지금의 병천면(竝川面)] 아우내 장터에서는 약 3,000여 명의 장꾼들이 모여 3단계로 만세 운동을 진행하였다.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 계와 동면(東面) 계로 나누어 계획되었고, 김구응은 동면계 인물이었다.
김구응이 참여한 만세 운동은 유관순이 주도적으로 활동한 만세 운동으로,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마침내 시위날이 되자 김구응은 아우내 장터로 가 군중들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는 등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일제의 무차별적인 발포가 있었고, 이로 인해 김구응이 사망하였다. 김구응은 총을 맞기 직전 일본 헌병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하였고, 이 과정에서 총을 맞았다. 헌병은 야만무도하게도 총을 맞고 쓰러진 김구응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구응의 어머니 최정철이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였다. 그러자 헌병은 그 늙은 어머니마저도 창과 칼로 찔러 죽이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1991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