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47
한자 鄭東萬
이칭/별칭 일원(一元)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창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72년연표보기 - 정동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30년 - 정동만 천안군수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 정동만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동래(東萊)
대표 관직 광주판관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개설]

정동만(鄭東萬)[1772~1841]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뒤 남원 도호부사로 승진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사복시첨정을 거쳐 광주 판관을 지냈다.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일원(一元), 아버지는 정언복(鄭彦復)이며, 목사를 지낸 정화순(鄭華淳)에게 입양되었다. 처는 군수를 지낸 박삼원(朴參源)의 딸이다.

[활동 사항]

1807년(순조 7) 생원시에 합격하고 1830년(순조 30) 천안 군수에 부임하였다. 1833년(순조 33) 남원 도호부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837년(헌종 3) 사복시첨정을 거쳐 1838년(헌종 4) 광주 판관을 지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03 내용 수정 정동만의 음관 참조하여 내용 재작성(2015.4.3)
이용자 의견
정** 금성) 縣令(현령)을 歷任(역임)후에 1830년(순조30)忠淸南道(충청남도) 天安(천안) 郡守(군수)를 거쳐 1833년(순조33) 全羅道(전라도) 南原(남원) 都護府使(도호부사)가 되었으나 赴任(부임)하지 않았고.1837년(헌종3) 司僕寺僉正(사복시첨정)을 거쳐 이듬해 廣州判官(광주판관)으로 나갔다. 2015.03.08
정** 1807년(순조7) 式年試(식년시)에生員(생원)3등 59위로 合格(합격)후에 蔭官(음관)으로 崇陵(숭릉) 參奉(참봉)을 거쳐 1825년(순조25) 宗廟署(종묘서) 副奉事(부봉사), 尙瑞院(상서원) 副直長(부직장), 直長(직장),繕工監(선공감) 主簿(주부)등을 지내고 1826년(순조26) 工曹正郞(공조정랑)을 거쳐 1828년(순조28) 江原道(강원도) 金城( 2015.03.08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