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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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之經 |
이칭/별칭 | 상백(常伯),기은(機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창열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개설]
정지경(鄭之經)[1586~1634]은 천안 군수였던 정근(鄭謹)의 아들로 부자가 모두 천안 군수를 지냈다.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임 군수 손여성(孫汝誠)이 지은 『문헌록』을 바탕으로 『속문헌록』을 간행하고, 고을의 효자와 열녀를 포상하였다.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상백(常伯), 호는 기은(機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구(鄭球)이고, 할아버지는 정희등(鄭希登)이다. 아버지는 정근이며, 어머니는 유수훈(柳秀薰)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활동 사항]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참봉(參奉)에 이어서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가 되었다. 1616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늙은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남평 현감을 희망하였으나 배천 군수로 발령되었다. 배천 군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쌓았으며, 그 공적으로 통정대부로 승품되었다.
1620년에 연안 부사로 부임했다가 1623년(인조 1)에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사임하였다.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까지 왕을 호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었다. 1628년에 천안 군수로 나갔다가 파직되었으며, 1632년에 파주 목사로 복직되었다.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예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상훈과 추모]
정사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선정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