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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772
한자 素那
이칭/별칭 금천(金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675년연표보기 - 심소나 사망
출생지 백성군 사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성격 무인
성별

[정의]

삼국 시대 천안 출신의 신라 장수.

[가계]

소나(素那)[?~675]는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출신이다. 심나(沈那)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백제가 망한 뒤 한주(漢州) 도독(都督) 유공(儒公)의 청으로 문무왕소나로 하여금 북쪽 변경의 아달성(阿達城)에 머물며 변경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백제에 이어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복속시키려는 욕망으로 군사를 내어 신라를 침공하는 한편, 말갈족 등 변방 민족을 충동하여 자주 신라의 변경을 침입하게 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소나는 변경 방비의 임무를 띠고 아달성에 머무르게 되었다.

675년(문무왕 15)에 아달성 태수 한선(漢宣)이 성의 백성들로 하여금 성 밖의 밭에 나가 베[麻] 씨를 뿌리도록 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탐지한 말갈족은 백성들이 모두 밭에 나가 성을 비운 사이에 갑자기 성을 습격하여 노략질하였다. 이때 소나가 분격하여 적에게 돌진하니 적은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활을 쏘았다. 소나도 마주 활을 쏘며 온종일 싸우다가 몸에 화살이 꽂혀 마치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쓰러져 죽었다.

소나는 평소에 “장부는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야 하며 자리에 누워 가족들의 손길 속에서 죽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다. 소나의 죽음을 전해들은 왕은 눈물을 흘리며 충절에 탄복하고 잡찬(迊飡)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노사신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할 때에 소나가 국난에 순국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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