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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시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00
한자 鐵器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강종원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 선사 시기에서 철을 사용하던 시대.

[개설]

한국 고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서기 전 300년에서 서력기원 전후 시기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서력기원 전후로부터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합쳐 철기 시대(鐵器時代)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철기를 사용한 시기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중국제 철기가 들어온 시기이다. 서기 전 4~3세기에 해당하며 명도전(明刀錢)이 압록강 중류 지방에서 서북 지방에 걸쳐서 출토되고 있다. 명도전은 연나라의 동폐(銅幣)로 표면에 ‘明’자가 양주(陽鑄)되어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주조로 된 농기구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무기는 여전히 청동제를 사용하였다. 중국도 이 시기에는 단조 철기(鍛造鐵器)가 보급되지 못하였고, 주조 철기(鑄造鐵器)만이 일반화되어 있던 것과 같은 양상이 전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단계는 철기가 본격적으로 생산 및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서기 전 108년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낙랑군(樂浪郡) 설치는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철기는 우리나라 전역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즉 도끼·가래·낫 등 철제 농경구와 단검·창·꺾창을 비롯한 무기류가 전국적으로 생산·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경주 일원에는 철을 채취하던 원시 용광로 유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이때 철을 생산하는 활동이 활발했음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4~3세기경이 되면 중국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철기 문화가 유입되고, 그 영향은 다시 남부 지역까지 파급되었다. 남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이 시기의 유물로는 한국식 청동 칼과 청동 거울, 그리고 주조 철부(鑄造鐵斧) 및 철착(鐵鑿), 유리제 관옥(管玉) 등이 있다. 주거지는 청동기 시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화덕 자리가 벽에 더욱 가까워지거나 화덕 대신 구들을 사용한 예가 있어 주거지 내부에서의 생활 공간이 더욱 확대되고 난방 방법이 새롭게 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철기의 사용은 생활의 양상을 여러 모로 변화시켰는데, 특히 철제 농경구의 출현으로 농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농업 생산력의 향상은 부의 증가를 초래하였으나 오히려 빈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어 더 큰 정치체의 출현을 가져왔다. 이를 연맹 왕국(聯盟王國)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단계이다.

철기 시대는 역사적으로 보아 북부 지역에서는 고조선과 위만 조선(衛滿朝鮮)에 이어 고구려가 등장하였고, 남부 지역에서는 삼한(三韓)이 자리 잡았던 시기이다. 서울 지역, 경주 지역, 김해 지역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독자적인 중심 세력이 형성되면서 각각 백제, 신라 및 가야 등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유적]

철기 시대의 무덤에는 널무덤[토광묘], 독무덤[옹관묘], 돌무지무덤[적석총], 즙석분(葺石墳) 등이 있다. 천안 지역에서는 철기 시대 유적이 확인된 바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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