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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418
한자 木川邑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천안군 목천면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천안군 목천면에서 천원군 목천면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1년 - 천원군 목천면에서 천안군 목천면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천안군 목천면에서 천안시 목천면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2년 - 천안시 목천면에서 천안시 목천읍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8년 - 천안시 목천읍에서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으로 개칭
성격 법정읍
면적 63,08㎢[2016년 6월 30일 기준]
가구수 10,911세대[2016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26,893명[남자 13,756명, 여자 13,137명][2016년 6월 30일 기준]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속하는 법정읍.

[명칭 유래]

목천은 군(郡)으로서 오랜 역사를 전개해오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폐군되어 면명(面名)이 된 것이다. 따라서 목천의 지명 유래는 고을 이름에서 찾아야 한다.

1968년에 목천 향교 전 전교 김붕수에 의해 증보 편찬된 『대록지(大麓誌)』 서문에 목천의 지명 유래가 명시되어 있다.

“육면(六面)의 물이 다섯 내로 흘러 저절로 목자(木字)의 형국을 이루었다. 이 내들이 송정(松亭)에서 합쳐 작천(鵲川)으로 주입된다. 도수구(都水口)는 풍광이 아름다워 별천지를 이룬다.[六面之水 五川自成 爲木字之形 合流. 於松亭 注干鵲川 爲都水口 可謂別乾坤勝地也.]”

목천 이전의 군명은 목주(木州), 대록(大麓), 대목악(大木嶽) 등 모두 ‘목’자와 관련 있는 이름들이다. 목주는 큰 고을의 명칭이며 대록(大麓)은 ‘큰 산기슭’이라는 뜻으로 대목악(大木嶽)과 상통하는 명칭이다. ‘목악(木嶽)’이란 수풀이 우거진 험준한 산이라는 뜻이다. 대목악(大木嶽), 대록(大麓)은 큰 산에 근거를 둔 명칭이며, 목천(木川)으로 변하면서 물로 옮겨간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라고 한다. 또한 ‘진목지간(鎭木之間) 가활만인지지(可活萬人之地)’라 하였다. 즉 진천, 목천의 공간은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라 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마한의 땅이었다. 온조가 남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하면서 마한의 왕이 동북방 100리를 줄 때, 목천은 왕성 주위 500리의 남부 지역이었다. 백제 시기에는 대목악군(大木嶽郡)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는 대록군(大麓郡)이었는데, 전의와 풍세를 거느리는 큰 군이었다.

고려에 이르러서는 목주(木州)라 하였으며 청주에 부속하였다. 고려 성종 때는 신정(新定)이라 했으며, 숙종 때에 목천군(木川郡)이 되어 내려오다가 명종 2년에 감무를 설치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1655년(효종 6)에 잉덕이 나무를 하다가 도끼날이 빠져 아버지가 맞아 죽음에 따라 군(郡)을 패하고 전의에 부쳤다가, 1664년(현종 5년)에 복군되었다. 1685년 (숙종 11)에는 진천현에서 위패 분실로 잠정 패쇄되어 목천현에서 관장하다가, 1690년(숙종 16) 진천현을 다시 넘겨주었다.

목천읍(木川邑)은 목천군의 군청 소재지였으며 읍내가 있다고 하여 읍내면(邑內面)과 군의 서쪽에 위치하여 있다고 서면(西面)이라 부르던 2개면과 북면의 역촌 일부를 포함하여 1914년 4월 1일 충청남도 도령 제3호에 의해 목천면으로 통합되어 충청남도 천안군에 편입되었다.

읍내면은 동평(東坪), 중보(中洑), 교촌(校村), 용연(龍淵), 후평(後坪), 신기(新基), 동리(東里), 역동(驛洞), 서지(西祉), 서당(書堂), 일덕지(一德至), 이덕지(二德至), 상와룡(上臥龍), 서흥(西興), 상림(上林), 남화(南化), 사기점(沙器店), 묵방(墨方), 석천(石川), 산방(山方), 신흥(新興), 유왕(留王), 중리(中里), 장흥(長興), 덕전(德田), 신평(新坪), 마점(馬店), 송전(松田), 신대(新垈), 서덕(西德), 만일(晩日) 등 31개리를 관할하다가 폐합되었다. 서면은 일운전(一云田), 의식(衣食), 소사(所士), 산곡(山谷), 도전(挑田), 응곡(應谷), 원동(院洞), 상남산(上南山), 하남산(下南山), 양지(陽芝), 도리티[道里峙], 신성(新省), 삼층(三層), 진지(眞芝), 관동(官洞), 신기(新基), 장평(長坪), 괴정(槐亭), 한천(寒泉), 신흥(新興), 농계(農溪), 주막(酒幕), 일승천(一升天), 이승천(二升天), 교항(交項), 세성면(細城面)의 노원(蘆院), 용산(龍山), 봉명리(鳳鳴里)의 각 일부와 북면(北面)의 역촌(驛村) 일부, 천안군의 소동면(小東面) 소시리(所柴里)와 전의군 역리(驛里) 일부를 병합하여 서면이 되었다. 읍내면과 서면이 병합됨으로 각 리가 해체되고, 다시 두세 개 마을이 하나의 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이후 목천면은 동평, 교촌, 동리, 서리, 서흥, 남화, 석천, 덕전, 송전, 운전, 소사, 응원, 지산, 삼성, 도장, 천장, 교천, 신계, 용원 19개리를 관할하여 오다가, 1917년 용원리성남면에 넘겨주어 18개리가 되었다.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가 될 때, 천원군 목천면이 되었다. 이후 본 마을 이름 찾기 일환으로 1991년에 천원군이 원 이름인 천안군이 되면서 다시 천안군 목천면이 되었다. 1995년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하여 천안시 목천면이 되었다가, 2002년에 읍으로 승격하면서 천안시 목천읍이 되었다. 2008년 천안시에 행정구가 설치되면서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이 되었다.

[자연 환경]

목천읍흑성산을 진산(鎭山)으로 해서 많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북으로는 흑성산을 위시해서 직산과의 경계인 성거산이 있고, 소금제, 중니산이 있다. 또한 동리중구봉, 운전리백운산·세성산, 천정리왕자산, 교천리취암산 등이 있다.

[현황]

2016년 6월 30일 현재 면적은 63,08㎢이며, 총 1만 911세대에 2만 6893명[남자 1만 3756명, 여자 1만 313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등학교 한 개와 1970년에 개교한 목천 중학교가 있고, 여섯 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1991년에 덕전 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2013년 현재 다섯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지서가 한 개이며, 우체국이 두 곳, 농업 협동조합이 세 곳, 보건소가 두 곳이다. 민족의 성지인 독립 기념관, 철기 이범석 장군의 거주지가 있고, 석오 이동녕의 출생지와 기념관이 있다. 효자·열녀의 정려가 한 기 있고, 효자·효부·충신비 다섯 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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