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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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重九峰-明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주경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6월 30일 -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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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이동녕 선생 생가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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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이동녕 선생 기념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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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풍수지리담|출세담 |
주요 등장 인물 | 이석구|이동녕 |
모티프 유형 | 왕이 출생할 명당터|행주형 명당|명당으로 의한 출세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과 동남구 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중구봉 아래의 명당터에 얽힌 이야기.
중구봉(重九峰) 아래는 귀한 인물이 탄생할 명당이지만 배가 떠내려가는 행주형(行舟形)이라서 태어나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자리이다. 독립운동가 이동녕(李東寧)[1869~1940]의 할아버지는 이러한 풍수지리를 알고 중구봉 아래에 아들 내외를 이주시켜 이동녕을 낳게 하였다. 이동녕은 열 살까지 이곳에서 살았으며, 뒷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지냈다. 중구봉 아래의 명당설이 입증된 것이다.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되어 있다.
중구봉은 목천 동헌[지금의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 목천 초등학교 터]에서 동쪽으로 올려다보이는 아홉 개의 봉우리로 된 산이다. 중구봉은 봉우리가 아홉 개일뿐더러 산 밑의 지세가 대궐과 같아 왕의 거처가 될 만한 땅이라 하였다. 원래는 구중궁궐(九重宮闕)과 같다는 뜻으로 구중봉(九重峰)이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하여 중구봉(重九峰)이 되었다.
중구봉 아래는 양택(陽宅) 명당으로 왕의 거처가 될 만한 땅이라고 한다. 그러나 행주형이라서 태어난 뒤 오래 살지 못하고, 살아서도 안 되는 자리라 한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의 할아버지 이석구는 본디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에서 살았는데, 세상이 하도 어지러운지라 승지(勝地)를 찾아 살 곳을 살피러 다녔다. 그러던 중 목천 중구봉 아래에 있는 행주형 명당을 발견하고 비싼 값에 터를 샀다. 이석구는 당장 아들 내외를 중구봉 아래로 이사시켜 살게 하였다. 아들 내외가 이동녕을 낳자 이석구는 손자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문의면에 있는 본가로 다시 불러들였다. 뒷날 이동녕이 큰 인재로 자라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 자리에 오른 것은 실로 중구봉 아래의 명당설이 맞아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구봉 아래의 명당」은 왕이 태어날 명당에 아들 내외를 이주시켜 손자를 낳게 한 이야기이다. 또한 행주형에서는 오래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에 다시 그곳을 떠나게 함으로써 결국 손자를 출세시킨다는 이야기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 할 것이다.